인생을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이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주는 이도 있지요. 만약 나를 몹시 괴롭혔던 사람이 큰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속으로 ‘고소하다’는 생각이 스칠 수도 있고, 한편으론 안타까운 연민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비록 죄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돌이켜 선한 길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용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창세기 18장과 19장에는 죄악이 극에 달했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등장합니다. 당장 심판을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곧장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릴 작은 근거라도 찾고자 직접 사자들을 보내 구석구석 살피게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아브라함은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하나님께서는 오십 명만 있어도 온 지경을 용서하겠다고 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힘을 얻어 ‘마흔다섯 명, 마흔 명, 서른 명, 스무 명’을 거쳐 결국 ‘열 명’까지 간청을 이어갑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땅엔 롯을 제외하고는 의인이 없음을 잘 알고 계심에도 아브라함의 청을 물리치신 것이 아니라 끝까지 들으시며 어찌하든 기회를 주길 바라셨지요. 안타깝게도 소돔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에 이르렀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시어 롯과 그의 가족만은 끝내 구원해 내셨습니다. 심판의 불길 속에서도 한 영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는 구약성경 요나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로, 이 역시 심히 부패하여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즉각 심판하는 대신 요나 선지자를 보내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자기 민족을 괴롭히는 적국 니느웨가 멸망 당하길 원했던 요나는 니느웨가 아닌 다스시행 배에 올라 하나님의 낯을 피해 배 밑창에서 잠을 청합니다.
결국 배는 큰 풍랑을 만나고, 요나는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밤낮을 지내며 불순종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지요.
그리고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치게 됩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이를 들은 니느웨 백성들이 왕뿐 아니라 백성들과 심지어 짐승들까지 물도 마시지 않으며 회개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겸비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이 심히 관영 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해 주십니다(요나 1-3장).
시편 103장 12-18절에 “그 언약을 지키고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사람에게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죄에서 돌이켜 진리 가운데 행해 나아간다면 용서하시고 축복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도 부부 간, 부모 자녀 간에, 형제와 이웃,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 온전한 용서로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보아 이러한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장 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