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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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13
제46과공의
시편 37:6
읽을말씀 : 시편 37:6 | 외울말씀 : 시편 37:6 | 참고 말씀: 갈라디아서 6:7
교육목표 :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법칙을 깨달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정확히 알고 행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공의
‘공의’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원인에는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하는 말이 있는데 진리 안에서는 공의의 법칙들이 더욱 확실하지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공의의 법칙도 있지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든가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 등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만 깨닫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찾아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며 모든 것의 주관자인데도 스스로 공의의 법칙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만든 법칙이니까 나는 안 지켜도 괜찮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공의에 맞게 정확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 사단을 다 멸하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 경작을 계획하면서 공의의 법칙을 정해 놓으셨고,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희생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단지 “주여, 믿습니다.” 하며 대충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공의의 양면성
흔히 사람들은 공의는 무섭고 두려우며 징계와 형벌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가 있기 때문에 죄와 악에는 무섭고 두려운 형벌이 따르지만 반면 응답과 축복을 가져다 주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공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것이지만,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열쇠와 같습니다. 칼을 강도가 들었을 때에는 흉기가 되지만, 어머니가 들었을 때에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양면성을 알면 공의는 사랑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 역시 공의가 있음으로 완성됨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빗나가서 잘못했을 때 무조건 체벌한다거나 아니면 무조건 용서만 해 준다면 자녀를 잘못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의에 따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용서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때도 있지요.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시며 무한대 용서의 사랑을 말씀하시지만,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시며 참사랑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공의에 대해서도 말씀하지요. 이는 사랑 안에서 공의가 온전케 되며 공의를 궁구하면 할수록 그 안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4. 수준이 다른 공의 차원
공의는 각각의 하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갈수록 공의의 차원도 더 깊고 넓어지지요. 또한 공의의 차원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각각 하늘마다 사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사랑과 공의는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사랑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공의의 차원도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복의 원리가 적용되었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시며, 보복의 원리가 깨지고 용서와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얼마나 사랑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똑같은 공의라도 적용되는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의 수준이 매우 낮은 차원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지극히 높은 차원의 공의를 적용시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요.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그들의 수준에 맞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낮은 차원의 공의의 법칙을 적용하며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주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뒤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차원을 보았기 때문에 용서와 긍휼이 적용되는 공의의 차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는 얼마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영으로 일구느냐에 따라 저마다 느끼는 차원 역시 다릅니다.
5. 공의의 기본법칙은 믿음과 순종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선과 겸비함 등 많은 응답의 법칙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법칙은 바로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응답받는 것이 바로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이러한 공의 법칙대로 행했지요.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위해 지배국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신분을 벗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겸비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인의 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오는 선한 마음도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가 응답받을 수 있던 까닭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만 나가면 어떤 병도 깨끗이 치료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였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 8 : 8)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서운케 하거나,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 등을 회개해야 하지요. 또한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며, 혈기, 짜증, 감정, 시기, 질투, 다툼, 거짓 등 온갖 악을 품고 행한 것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기도받을 때 믿음이 주어지고 믿음대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각종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심는 등 응답받기 위해 순종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순종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즉 교만, 자존심, 틀, 생각, 이론, 세상의 자랑, 세상에 의지하려는 마음 등을 다 버려야 하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을 하나하나 깨달아 행함으로써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과 그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랑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 ) 역시 공의가 있음으로 완성된다. ( )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 )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다.
3. 공의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갈라디아서 6:7 ② 고린도후서 9:6
③ 마태복음 10:39 ④ 마태복음 18:20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
첫째 하늘 -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이다.
둘째 하늘 -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는 곳이다.
넷째 하늘 - 근본 하나님의 공간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이다.
교육목표 :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법칙을 깨달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응답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공의를 정확히 알고 행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공의
‘공의’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원인에는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하는 말이 있는데 진리 안에서는 공의의 법칙들이 더욱 확실하지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공의의 법칙도 있지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든가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 등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만 깨닫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찾아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며 모든 것의 주관자인데도 스스로 공의의 법칙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만든 법칙이니까 나는 안 지켜도 괜찮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공의에 맞게 정확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께서 원수 마귀 사단을 다 멸하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 경작을 계획하면서 공의의 법칙을 정해 놓으셨고,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희생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단지 “주여, 믿습니다.” 하며 대충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공의의 양면성
흔히 사람들은 공의는 무섭고 두려우며 징계와 형벌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가 있기 때문에 죄와 악에는 무섭고 두려운 형벌이 따르지만 반면 응답과 축복을 가져다 주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공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것이지만,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열쇠와 같습니다. 칼을 강도가 들었을 때에는 흉기가 되지만, 어머니가 들었을 때에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양면성을 알면 공의는 사랑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 역시 공의가 있음으로 완성됨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빗나가서 잘못했을 때 무조건 체벌한다거나 아니면 무조건 용서만 해 준다면 자녀를 잘못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의에 따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용서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때도 있지요.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시며 무한대 용서의 사랑을 말씀하시지만,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시며 참사랑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공의에 대해서도 말씀하지요. 이는 사랑 안에서 공의가 온전케 되며 공의를 궁구하면 할수록 그 안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4. 수준이 다른 공의 차원
공의는 각각의 하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갈수록 공의의 차원도 더 깊고 넓어지지요. 또한 공의의 차원에 차이가 나는 것은 각각 하늘마다 사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사랑과 공의는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사랑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공의의 차원도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복의 원리가 적용되었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시며, 보복의 원리가 깨지고 용서와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얼마나 사랑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똑같은 공의라도 적용되는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의 수준이 매우 낮은 차원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지극히 높은 차원의 공의를 적용시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지요.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그들의 수준에 맞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낮은 차원의 공의의 법칙을 적용하며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주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뒤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차원을 보았기 때문에 용서와 긍휼이 적용되는 공의의 차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는 얼마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영으로 일구느냐에 따라 저마다 느끼는 차원 역시 다릅니다.
5. 공의의 기본법칙은 믿음과 순종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선과 겸비함 등 많은 응답의 법칙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법칙은 바로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응답받는 것이 바로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이러한 공의 법칙대로 행했지요.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위해 지배국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신분을 벗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겸비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인의 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오는 선한 마음도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가 응답받을 수 있던 까닭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만 나가면 어떤 병도 깨끗이 치료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였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 8 : 8)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서운케 하거나,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 등을 회개해야 하지요. 또한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며, 혈기, 짜증, 감정, 시기, 질투, 다툼, 거짓 등 온갖 악을 품고 행한 것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기도받을 때 믿음이 주어지고 믿음대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각종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심는 등 응답받기 위해 순종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순종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즉 교만, 자존심, 틀, 생각, 이론, 세상의 자랑, 세상에 의지하려는 마음 등을 다 버려야 하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을 하나하나 깨달아 행함으로써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과 그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랑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 ) 역시 공의가 있음으로 완성된다. ( )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 )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다.
3. 공의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갈라디아서 6:7 ② 고린도후서 9:6
③ 마태복음 10:39 ④ 마태복음 18:20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
첫째 하늘 -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이다.
둘째 하늘 -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는 곳이다.
넷째 하늘 - 근본 하나님의 공간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이다.
2026-11-06
제45과빛
요한일서 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1:5 | 외울말씀 : 요한일서 1:5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1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나지요.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합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모든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나아가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였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지요.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지요(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요한복음 1장 2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고 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빛이 무엇인지 알아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빛의 자녀가 되게 한다.
빛에는 참으로 신비한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어둠을 밝혀 주며 따뜻하게 하고 몸에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소멸시키며, 식물이 광합성 작용을 하여 생명을 유지하도록 돕지요. 이처럼 우리가 볼 수 있는 육적인 빛이 존재하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빛도 실존합니다. 영적인 빛에서는 무한한 능력이 나타나지요.
캄캄한 밤에 빛이 비취면 어둠이 순간에 사라지듯이, 영적인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한 어둠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합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습니다.
1. 영적인 빛이란?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빛은 하나님 자체요, 진리, 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모든 우주를 품고 계셨지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온 우주를 감싸고 그 빛으로부터 청아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나왔습니다.
빛과 소리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후 창조 사역을 시작하셨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로 존재하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빛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를 소리로 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된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성경에는 사랑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기뻐하라 등 “하라” 하신 것들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한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주님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라” 하신 것을 지키지 않으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는 것은 어둠에 거한다는 증거입니다.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어둠의 세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므로 어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신속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3.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만일 어둠에 있으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서로 믿고 대화할 수 있는 친밀한 사이를 말합니다. 아무리 내 편에서 대통령에 대해 잘 안다 해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사귐이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사귐에도 얼굴만 아는 정도와 서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있고, 나아가 깊은 비밀까지 나누는 친밀한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 편에서도 나를 알고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하거나 가난할 리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실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습니다.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였지요.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일일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 주심으로 전쟁마다 승승장구했지요. 다윗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지요.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옵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늘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지요. 어떤 사람과도 다투거나 불목하지 않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한 축복을 받지요(요삼 1:2). 나아가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지요.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더욱 마음을 낮추며 소자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겸손히 귀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상대가 나에게 악을 행한다 해도 감정을 품지 않고 덕과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하지요. 더구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 가운데 화평을 깨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입기 마련입니다. 범사에 형통함과 축복을 받고 온전히 성결되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면 권능까지 받아 크게 쓰이게 되지요. 따라서 나는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참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세요.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 )이시라 그에게는 ( )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한일서 1:5)
“태초에 ( )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 )이시니라”(요한복음 1:1)
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은 빛이시요, 진리, 선, 사랑 자체가 되신다.
②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빛과 소리로 계셨다.
③ 요한복음 1장 2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고 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말씀과 하나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다(요 1:1). 여기서 ‘태초에 계셨던 말씀’은 바로 근본의 빛 속에서 울려나오는 근본의 소리를 뜻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소리’라는 형태보다 소리의 본질인 ‘말씀’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말씀이 내용이라면, 하나님은 그 내용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말씀이요, 그 말씀은 빛과 소리라는 형태로 근본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2026-10-30
제44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디모데후서 2:20~21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참고 말씀: 예레미야 17:9, 요한일서 5:3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와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의 총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오직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사용이 가능하지요.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아이에게서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니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시오.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알고 넘어갑시다!
‘에스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원래 그릇의 용도는 무언가를 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신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말씀을 담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님 능력과 권세와 권능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요?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아무리 많은 돌무더기 속에서도 보석은 반짝반짝 빛을 발하므로 금방 눈에 띕니다. 영적으로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하나님 눈에 띄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에게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고’, ‘귀히 여기시며’, ‘아름답다고 인정하시는 그릇’의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그릇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큰 사명을 맡았으되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가령, 주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는 그릇은 보통 사람과는 달리 정직하고 진실하며 정한 마음과 곧은 절개로 품격과 품위가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강대국의 총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요셉과 다니엘과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그릇은 마음이 선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오직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입니다. 민족을 구한 에스더나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린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마음을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그릇이라 해도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깨끗이 씻은 후에야 사용이 가능하지요. 우리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과 물질, 건강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깨끗한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장 18~19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이 악으로 나오지 않으려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씻는 것은 영적인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2절에는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면 자연히 몸의 행실도 거룩해지고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켜 행할 수 있을까?’ 하고 힘들다 어렵다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하는 일은 마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들거나 어렵고 짜증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며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뜻을 위배하는 것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 연단을 잘 받아 영적 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에 연마된 후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보석으로 탄생하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육 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도록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즉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시련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해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고 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어 시험 환난을 당한다면 이것은 축복을 위한 연단이 아닙니다. 죄로 인한 것이기에 이런 경우에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우쳐 신속히 회개해야 어려움이 사라집니다.
이와는 반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이미 깨끗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으신 거룩한 빛 자체이시니 사랑하는 자녀들도 보석보다 아름다운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단련하십니다. 이러한 축복의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빛의 강도가 커짐에 따라 그 권세와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나지요.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마가복음 9장 1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내쫓지 못한 귀신을 아이에게서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니 즉시 나가고 아이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것은 그들의 영적 빛과 예수님의 영적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밝은 영적 빛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믿음과 선, 사랑과 의가 진실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도 제어할 수 있고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도 고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둘러 주시는 영적 빛은 이 세상의 어떤 빛보다도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영적 빛으로 둘러싸인 자녀를 하나님께서는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라 인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성결을 이루며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2. 다음 말씀 구절들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를 쓰시오.
①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 )이라”
② 마태복음 15:18~19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 )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③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 )도 있느니라”
● 알고 넘어갑시다!
‘에스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귀환하지 않고 바사에 머물던 베냐민 지파 아비하일의 딸이다. 일찍 부모를 잃어 사촌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 에스더는 와스디가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자 왕의 사랑과 은총을 입어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아각 사람 하만은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존경을 표하는데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여기에 분을 품고 유다인들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때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가 하만의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여 민족을 구한다.
2026-10-23
제43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 12:1~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2:1~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2 | 참고 말씀: 레위기 25:23~28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은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고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이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이 흠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고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적어 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에 미리 주관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여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교육목표 :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자격 조건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닌다고 하지만 ‘왜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르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사람들이 그 영적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참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예수님은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롬 6:16).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지요.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첫 사람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의 토지 무르기법칙입니다. 이는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어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게 하였습니다(레 25:23~28). 천하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아담에게 넘겨받은 권세를 원수 마귀 사단이 영영히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를 대속할 만한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님을 만세 전에 예비하고 비밀한 가운데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넘겨준 권세를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어떻게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이 구세주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25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습니다. 아담이 넘겨준 권세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하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합니다(요 1:14).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려면 죄인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담의 후예는 구세주의 조건에 합당치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남녀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마 1:18). 그러니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죄가 없으십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27).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빚을 갚아 줄 수 없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므로 원죄가 없고 말씀대로 사셨기에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죄가 없기 때문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대부호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빚더미에 앉은 동생을 도와주지 않지요. 만일 예수님께서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이 있으셨기에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려 죽으셨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므로 저주를 받아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놓이게 하려면 예수님이 대신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지요.
또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습니다. 피는 생명과 일체요,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기에 예수님이 흠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3.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진리로 변화되는 것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질병, 연약함, 가난 등 온갖 저주에서도 놓인 바 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서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셨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쓰셔서 우리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셔서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 섭리를 바로 알고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이라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받지 못하고 시험 환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믿는다고 하지만 참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죄를 버리지 않고 진리로 변화되지 않지요. 주일날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락을 즐기는가 하면 아예 지키지 않습니다. 또 십일조가 아까워 일부만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니(말 3:8) 어찌 축복이 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남의 잘못을 용서치 않고 되갚아 주고자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원망하고 탄식하지요.
주님을 진정 믿는다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악한 말을 내던 입술에서 선한 말로, 불평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고 주변에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지요. 따라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참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심으로 증인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자격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힘이 있어야 한다.)
넷째, ( )
2. 죄인은 지옥으로 떨어져 죽을 수밖에 없다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롬 6:23)
3. 주님을 믿고 진리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적어 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십일조’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식 규례로 드리기 시작한 것은 출애굽 이후부터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은 정식 규례로 정해지기 전에 미리 주관을 받아 하나님께 드렸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일에, 영혼 구원하는 데 쓰여졌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며, 구원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분야이다.
2026-10-16
제42과나의 믿음은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 | 참고 말씀: 로마서 9:3
교육목표 :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 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먼저 입술을 지키는 분야에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다윗과 시므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런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하였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졌지요.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습니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 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엘리사와 사도 바울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입니다.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들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지요(롬 9:3).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인물은 요셉과 사울 왕입니다. 요셉은 17세에 이복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인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되었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하여 결국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왔지요.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써보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에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 알고 넘어갑시다!
‘압살롬’
다윗의 아들로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 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교육목표 : 참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입술에 선한 말을 내고, 맡기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과 지옥을 보지 않고도 마치 보고 만진 듯이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큰 믿음이 있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을 나타내어 영광 돌릴 수 있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순전한 정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믿음인지요? 아니면 도금된 금속처럼 겉으로만 그럴 듯한 믿음인지요? 세 가지 분야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입술을 지키는 분야
먼저 입술을 지키는 분야에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다윗과 시므이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이스라엘의 왕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자기 허물을 가리기 위해 충성스런 부하를 의도적으로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아들을 피해 도망할 때의 일입니다. 시므이라는 백성이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하며 다윗에게 심한 저주와 모욕을 하였습니다(삼하 16:7~8).
이러한 시므이의 말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자기 죄악 때문이었지 다윗과는 상관없습니다. 또한 다윗이 겪는 어려움은 하나님께 저주나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요. 잘못은 이미 회개하여 용서를 받았지만 공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왕을 저주한 것은 사형감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많은 백성과 용사들이 있어서 얼마든지 시므이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는 용사들을 만류하였지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그가 저주하게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연단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졌지요.
반면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냐민 지파 사울 왕의 일족으로 사울이 죽자 마치 다윗의 탓처럼 원망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이름까지 망령되이 일컬으며 다윗에게 분풀이했습니다. 남의 고통을 보고 긍휼히 여기기는커녕 온갖 악을 쏟아냈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근본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입술을 가졌습니까? 시므이처럼 누가 애매한 말로 비난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데 이 사람까지 왜 이러나?” 하며 짜증을 내거나 독한 말로 상대를 찌르지는 않습니까? 이런 사람은 믿음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시므이처럼 자기 악 속에서 상대를 판단 정죄하고 저주하는 입술이라면 믿음이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요. 정녕 참 믿음이 있다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2. 영혼 사랑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성경 인물은 엘리사와 사도 바울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갑절의 영감을 받아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치고 귀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냈지요. 전쟁이나 사람의 생사화복도 엘리사가 예언한 대로 이뤄졌습니다. 그 밖에도 독이 든 음식을 해독하기도 하고 물에 빠진 도끼가 떠오르게 하는 등 참으로 신기한 일들을 많이 행했습니다.
이는 엘리사가 스스로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승인 엘리야를 통해 받은 권능입니다. 그래서 큰 권능을 행하기는 했지만 엘리사의 마음은 사도 바울의 마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엘리사가 길을 가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쫓아다니며 조롱하고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이에 견디다 못한 엘리사가 저주하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악한 아이들 중 42명을 죽였지요(왕하 2:24). 엘리사도 자기 입술의 권세가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처음에는 못들은 척 피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십 명이 계속 쫓아다니며 심하게 괴롭히자 견디지 못하고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라면 이런 상황에 어찌했을까요?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당한 고난은 엘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40여 명의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곳마다 훼방하며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어느 때는 죽었다 할 정도로 돌에 맞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요. 이처럼 숱한 고난과 위협을 받을 때도 바울은 그들에게 한 마디 저주의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했지요(롬 9:3). 유대인들이 아무리 자신을 핍박해도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혼들을 향한 사랑은 어떻습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양 떼들을 대하며 사명을 감당했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 중심에서 영혼들을 사랑하며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참된 일꾼이라 인정해 주시며 기뻐하십니다.
3. 순종의 분야
여기서 조명해 볼 인물은 요셉과 사울 왕입니다. 요셉은 17세에 이복 형들에 의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13년간 갖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으로 있을 때도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고,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억울하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과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지요. 자신을 죽이려 하고 타국에 종으로 팔았던 형님들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뜻을 좇아 선대했습니다. 복수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어쩔 수 없이 용서한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가령, 교구에서 행사가 있는데 한 지역이 양보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이에 처음에는 순순히 양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행사 때마다 자기 지역이 양보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지역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졌지요. 나름 열심히 섬기고 낮아지려고 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니 힘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일꾼이라면 일시적인 행함으로만 섬기고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처음에 순종하려던 마음이 시간이 흐르자 자기 생각에 안 맞고 힘드니까 변질되었다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다고도 볼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과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으십니다.
사울 왕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거듭 불순종하여 결국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 끌고 왔지요. 그러면서도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짐승들을 사로잡아 온 것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가 지적할 때도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하지요(삼상 1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조금은 내 생각에 맞춰 바꾸고 약간은 내 유익에 맞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명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요셉과 같은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 왕처럼 내 생각에 맞춰 변질시켜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가는 마음은 없는지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나는 누구일까요? ( ) 안에 정답을 써보세요.
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낙심하지 않고 정직과 성실로 행했습니다. 죄없이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섭리에 한결같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 )
②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공격하여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다 진멸하라고 명하셨는데 나 보기에 좋은 짐승과 왕을 살려서 끌고 왔습니다.( )
③ 아이들이 쫓아다니며 너무 심하게 조롱하므로 저주의 말을 내자 수풀에서 암곰이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
④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도망갈 때에 일개 백성인 시므이가 심하게 저주와 모욕을 했어도 결코 악한 말을 내지 않았습니다.( )
● 알고 넘어갑시다!
‘압살롬’
다윗의 아들로 그에 대해 성경은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했다(삼하 14:25). 압살롬은 누이 다말을 범한 이복 형제 암논을 살해한 후 다윗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다. 요압 장군의 중재로 아버지 다윗과 화해했지만 나중에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삼하 15:1~12). 후에 압살롬은 다윗 군과 싸우다가 도망하던 중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다(삼하 18장).
2026-10-09
제41과교회의 이상적인 모델, 초대교회
사도행전 2:42~47
읽을말씀 : 사도행전 2:42~47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46 | 참고 말씀: 요한복음 4:48 ; 고린도전서 4:20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해 줄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을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지요.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신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 )
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교육목표 : 어떤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한 초대교회 성도들을 본받게 한다.
주님의 부활, 승천 이후 약 2천 년 동안 이 땅에는 수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중에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게 사역한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제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초대교회입니다. 당시 큰 핍박 속에서도 폭발적인 부흥을 이루어 온 초대교회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데 초석이 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가 있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초대교회 특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일들로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일어날 수 있는 역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랜 가뭄 중에 비를 오게 하고 태풍의 진로를 바꾸거나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는 등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인에게 증거해 줄 수 있지요. 그럴 때 불신자나 믿음이 적은 사람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믿음이 성장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지식이 발달하고 죄와 불법이 성한 시대에는 더욱 이러한 기사와 표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 당시에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당시 성도들은 늘 성령 충만함 가운데 살았으며, 오직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날 수 있었지요. 더욱이 당시에는 사도들이 친히 치리했습니다.
‘사도’란 영적으로 자기 의사가 없고 마음을 다해 오직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도’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성결되어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좇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을 받아 위로부터 능력을 받고 권능도 행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 날로 믿음이 성장했고, 주의 종이 아닐지라도 스데반, 빌립 집사처럼 권능을 행하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자신이 체험한 성령의 역사를 널리 전파했고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능력은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여러분도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주님의 사도로서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2.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성도 간에 얼마나 영적인 사랑이 풍성했는지 보여 주지요.
성도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형제자매이기에 그들은 내 것, 네 것 없이 주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천국 소망으로 뜨거웠고 이 땅에 물질을 쌓아 두려는 욕심이 없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주며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그러니 초대교회와 같은 성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 안에서 한 형제라는 가족의식이 돈독해지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쉽게 버릴 수가 있지요. 여러분이 삶 속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많은 영혼이 그 행함을 보고 주님 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재산과 소유를 서로 나누며 통용했다는 것은 단지 물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나눴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 안에 어떤 대립이나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지 않지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의 형편을 돌아보아 서로 섬기고 나누며 화평을 이룰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했습니다. 여기서 떡이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므로‘떡을 뗀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로부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늘 깨어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지요. 이렇게 모이기에 힘쓰며 불같이 기도해 능력을 받으니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도하고 충성 봉사해 이 땅에서 축복받고 하늘나라에도 상급을 쌓아갔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교회가 점점 모이기를 폐하고 있습니다. 새벽예배가 사라진 교회도 있지요.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신 말씀처럼 교회는 모이고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의 불이 항상 활활 타오를 때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교회, 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의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47절에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했다는 말입니다. 천국 소망이 가득함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니 주변 사람에게 칭송을 받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야.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다.” 하며 칭송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가 하나님 뜻을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부흥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한 대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썼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지극히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므로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영혼의 축복, 건강이나 물질, 가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초대교회 성도와 같이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불같이 기도하며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의 특징을 써 보세요.
( )
2.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자신이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 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
스데반 집사 -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교회에서 구제 사역을 맡을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민간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으며 공회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 악한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다. 자신을 돌로 치는 이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를 올렸다.
빌립 집사 - 스데반 집사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교회에 큰 박해가 있자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 많은 표적과 능력을 행했으며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네 명의 예언하는 딸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신실하며 자녀를 진리 안에서 잘 양육했는지를 말해 준다.
2026-10-02
제40과사망에 이르는 죄
마태복음 12:31~3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2:31~3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6 | 참고 말씀: 히브리서 6:4~6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성령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 )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결코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황폐한 마음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하여 어느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 있는 죄는 결코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된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하신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결코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성령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그러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을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 )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2026-09-25
제39과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
베드로후서 2:2~3
읽을말씀 : 베드로후서 2:2~3 | 외울말씀 : 베드로전서 5:8 | 참고 말씀: 요한일서 4:1~6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했지요. 이들은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요한은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받지 않고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갑니다.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사람일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지옥이 없다 주장하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했지요. 이들은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계속 변론해도 소용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님을 의지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일 4:1)라고 권면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라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 하면서 교회만 왔다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적으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을 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의지하여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요한은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2026-09-25
제0과추석 명절 감사 예배 순서와 예문
민수기 6:24~26
읽을말씀 : 민수기 6:24~26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 추석 감사 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민수기 6:24~26 -------------------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설교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당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었으며, 독이 있는 불 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기를 원하십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듯이 사고와 질병, 재앙이 많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주셔야 건강할 수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온 가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늘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합니다. 이처럼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축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와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 추석 감사 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민수기 6:24~26 -------------------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설교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당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었으며, 독이 있는 불 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요.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기를 원하십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듯이 사고와 질병, 재앙이 많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주셔야 건강할 수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온 가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늘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합니다. 이처럼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축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와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6-09-18
제38과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베드로후서 2:1
읽을말씀 : 베드로후서 2:1 | 외울말씀 : 베드로후서 2:1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22~23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는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라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알고 넘어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여 미혹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당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4~5)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는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후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를 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라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죄로 인하여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에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지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이지요.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의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박수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알고 넘어갑시다!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다.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여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