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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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5
제36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민수기 12:3, 7
읽을말씀 : 민수기 12:3, 7 | 외울말씀 : 민수기 12:7 | 참고 말씀: 출애굽기 32:32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지요.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립니다.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납니다. 이에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이내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를 써 보세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말씀합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지요.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립니다.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납니다. 이에 바로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봐 모른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로서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생활이 적응되자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이내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범죄함으로 마침내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하였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며 방탕히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립니다(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겨진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습니다.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요.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사명을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를 써 보세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말씀합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2025-08-29
제35과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읽을말씀 : 요한복음 21:15~1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6:53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29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 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결코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에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하였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들은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 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들,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결코 주님은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에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하였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겨진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하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2025-08-22
제34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한복음 12:2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2:2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2:24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2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옛사람,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당한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어진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은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그렇게 하면 되지요.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들을 섬긴다면 가정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어졌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이러한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인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옛사람, 새사람’(골 3:9,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2025-08-15
제33과사람의 본분을 찾자
전도서 12:13~14
읽을말씀 : 전도서 12:13~14 | 외울말씀 : 전도서 12:13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1:16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고 온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좇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오직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신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신의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고 온전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되었지요.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범죄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좇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오직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신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마음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의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신의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2025-08-08
제32과다시 오실 주님
마태복음 24:32~34
읽을말씀 : 마태복음 24:32~34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6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20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교육목표 :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공중 강림과 여러 징조들을 조명해 봄으로 더욱 깨어 근신하게 한다.
약 2천 년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으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40일 후에는 하늘로 승천하셨지요.
이때 제자들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있자 두 천사가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말합니다. 과연 주님은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1. 예언대로 성취될 주님의 공중 강림
구약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의 고난 등 수많은 예언이 나옵니다. 그중 대부분의 예언이 성취되었고 장차 이루어질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 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이 남아 있습니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을 버리고 깨어 근신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니 세상의 헛되고 썩어질 것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을 보면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장차 공중에 어떻게 강림하실 것인지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가장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합니다. 이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잠자는 자’라고 하지요(고전 15:20).
무덤에 장사되어 잠자는 자들의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하고 공중에서 영혼과 함께 결합되어 부활체가 됩니다. 이렇게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면, 그다음에는 죽지 않고 이 땅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즉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성경 곳곳에 나오지만,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시험하는 사람도 있지요. 심지어 극단적인 종말론자들로 치부하며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속히 성취될 일입니다.
알곡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기에 신부 단장에 힘쓰며 신랑 되신 주님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잘한 성도들은 구원받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쭉정이 성도는 주님의 재림을 믿지 않고 신부 단장을 하지 않다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특별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이 맞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날과 그때를 안다며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어 근신하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고 빛 가운데 행해야 하지요. 그런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지만, 세상과 짝하며 어둠에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아무리 외쳐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며 세상을 취하다 결국 홍수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독립하였을 때는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라고 저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힐 때가 아니므로 잎사귀만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평소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요?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 강조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한 대로 그 피는 이스라엘과 그 자손에게 저주로 임했지요(마 27:25). A.D. 70년,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는 서러움과 멸시 천대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나치에 의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는 등 그들에게 임한 저주와 시련은 참혹하리만큼 무서웠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율법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그날이 바로 1948년 5월 14일이지요. 완전히 멸망하여 없어진 나라가 약 1900년 만에 재건된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설 것을 곳곳에 예언해 놓았습니다. 이사야 49장 8절에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게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에스겔 38장 8절에는 “여러 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했지요.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 이스라엘은 독립한 후 짧은 시간에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심히 가까웠음을 깨달아 신부 단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 )라고 표현한다.
2.‘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뜻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리새인’이란?
신약 시대 유대계파 중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로,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또한 모세의 율법을 연구하며, 레위기의 청결 의식을 철저히 지켰다.
이들은 장로의 유전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신 것과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까지도 안식일을 범했다고 간주했다.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고 겉으로만 거룩한 체하는 이들은 예수님께 ‘회칠한 무덤’과 ‘외식하는 자’라는 엄한 책망을 들었다.
부활과 천사와 영의 존재들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은 이를 부인하는 사두개인들과 대립하기도 했다(행 23:6~8).
2025-08-01
제31과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2:12 | 외울말씀 : 요한계시록 22:12 | 참고 말씀: 말라기 3:10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교육목표 :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물질의 축복, 천국의 상급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오늘날 “주여, 주여”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를 지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1)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이 마음에 믿어져야 재림도, 천국도 믿어지고 구원의 확신이 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라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며, 이 믿음이 있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행함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에 불과합니다(약 2:26).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있으면 입술로 시인하게 되고, 말씀을 듣고 깨우친 만큼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함이 따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을 내보인 만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성령을 체험케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할례를 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구원에 이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 낸다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착각 속에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간다면 성령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도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행함 있는 믿음으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의를 이루어 갈 때라야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자신을 철저히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고 구원의 문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물질의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물질로 심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지 않은 데서 거둘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합니다. 즉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초신자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마치 물질에 손해가 갈 것처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면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십니다. 어떤 사고나 재앙에서도 보호해 주시므로 물질이 낭비되지 않습니다.
감사예물이나 절기예물 등 헌물을 할 때도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지요(고후 9:6).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공궤하였습니다. 과부가 이렇게 귀한 것을 심었기에 비가 다시 올 때까지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헌물을 드리되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겨 드려야 합니다(고후 9:7).
3.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에 따라 행함이 각기 다릅니다. 믿음이 큰 만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늘에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잘하면 인정을 받고 상을 받아 장래가 보장되고 자신에게 영광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창조주이시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없어지지 않고 영광이 되는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에 대한 상급이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거두게 하는 분이니 얼마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시겠습니까.
특히 영혼 구원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며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한 영혼도 잃지 않기 위해 더욱 사랑하며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 구원을 위해 모진 핍박과 환난을 받으면서도 감사했고, 영혼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참수를 당하면서도 이 땅에 남겨진 영혼들을 걱정하며 믿음으로 세상을 잘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헌신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은 물론 천국에서 높은 서열에 이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며 상급을 쌓기에 힘쓰게 됩니다. 더구나 주의 종이나 지역장, 조장, 구역장, 연합회장, 선교회장, 기관장이라면 부흥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요. 성가대나 교사, 봉사대, 헌금위원 등 자신의 달란트를 살려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 봉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는 것은 모두가 상급이 됩니다.
가령, 교회가 성전 건축을 한다면 벽돌 한 장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금식과 기도로 심는 것 또한 상급이 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도 잊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누가 어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들을 귀히 여기며 이웃을 섬기는지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늘나라에 많은 상급을 쌓고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에 믿어지는 ( )이 있어야 한다.
② ( )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 주님을 영접하여 ( )을 받았다 할지라도 말씀대로 살지 않고 짐짓 죄를 지어 나가면 ( )이 소멸되며 결국 하나님과 상관이 없어진다.
3.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쓰고 외워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성령 훼방, 거역, 모독하는 죄를 말한다(마 12:31~32, 눅 12:10).
또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죄와(히 6:4~6),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히 10:26~27)
2025-07-25
제30과열 므나 비유
누가복음 19:11~27
읽을말씀 : 누가복음 19:11~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26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44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교육목표 :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인 장사를 잘하여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한다.
흔히 열 므나 비유와 달란트 비유를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 둘의 영적인 의미는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는 영적인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주님께 인정받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누가복음 19장 12~13절에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했습니다.
여기서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므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는 사명에 관한 것으로 각기 재능에 따라 다르게 달란트를 나눠 주었지요. 그러나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므로 모든 사람이 한 므나씩 공평하게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한 므나씩 나눠 준 뒤 귀인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여기서 ‘먼 나라’란 하나님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기 전에 므나를 나눠 줬으므로 실제와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8절에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왕권을 얻어 부활체로 나타나실 것을 볼 제자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고 부활을 알리신 후,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다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미 하나님께 가서 왕위를 받으셨는데, 왜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기 전에 한 므나씩 나눠 주었다고 하신 것일까요?
여기서 왕위는 주님 자신을 위한 왕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도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성도들의 왕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각각 한 므나씩 나눠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부 된 자격으로 주님을 맞이할 때가 곧 주님의 공중 강림의 때요,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장사한 것을 알아보는 때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눠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장사하라는 것일까요? 달란트 비유에서는 각각 그 재능에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장사로 표현했지만, 열 므나 비유에서의 장사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누구나 똑같이 받은 성령으로 장사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그것이 진정 귀한 것임을 안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사야 하지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산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비진리에 속한 육신의 생각이나 이론, 육체의 소욕 등을 버리고 깨뜨림으로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진리의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성결을 이루었음을 의미합니다.
3. 한 므나로 장사한 것을 회계하시는 주님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불렀습니다. 한 종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결된 사람이 받는 칭찬과 상입니다.
이어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고만 하고 칭찬은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장사는 하였지만, 열 므나를 남긴 종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장사도 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종에게는 “악한 종아 …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하며 책망하지요.
악한 종은 이미 성령을 받고서도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악 중에 살았습니다. 그러고는 되려 주인을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이라 판단하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자녀들이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니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라고 부탁하셨지요. 그런데 한 므나를 받은 종은 오히려 무섭고 엄한 하나님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에 싸 두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고 한 므나마저 빼앗기고 맙니다. 이는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계속 죄 가운데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계 3:1~6).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살며 죄를 버리는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니 진리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회개하기는커녕 시험거리를 만들고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구원에 이르지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왕 됨을 원치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마 27:23).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 시험거리를 만들고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하며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9장 24절 이하에 보면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영이 죽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한 므나를 받은 것입니다. 나아가 열 므나를 남기면 칭찬받고 열 고을 다스릴 권세를 차지할 수 있으니, 열심히 장사하여 성결을 이룸으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귀인은 ( )를 의미하고, 므나는 ( )을 의미한다.
2. 열 사람이 한 므나씩 동일하게 받은 것처럼,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 )을 받는다.
3.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는 장사, 곧 성결되기 위한 장사를 하되 온전하게 장사하여 마음의 ( )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4. 귀인은 누구의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해 먼 나라로 간 것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므나
영적으로 성령을 의미하는 므나는 금과 은, 보석 같은 귀금속의 중량을 재는 단위로 사용되었으며 달란트의 60분의 1 에 해당한다.
2025-07-18
제29과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4~30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5:21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5:26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성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사명자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를 통해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적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예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예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예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 자기의 생각에 맞춰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추어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열매 맺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된다.
‘1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 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2025-07-11
제28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1: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1:1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31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천국을 믿음으로 침노하여 소유하게 한다.
올림픽에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의 기쁨은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뼈를 깎는 듯한 고되고 힘든 훈련들을 잘 견디어 낸 눈물과 땀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잠시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도 상을 받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고 고통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요. 하물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1. 믿음으로 침노하는 천국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김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나아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라 할지라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 어떻게든 죄를 짓도록 미혹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성결을 이루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믿음이 성장하므로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마태복음 11장 12절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하지요.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 시대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인도함 받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를 성령 시대, 은혜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는 은혜의 시대이니 죄를 지어도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28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 시대에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로 죄가 성립이 됩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한다면 그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현저히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음행, 호색, 우상 숭배, 분쟁, 투기, 방탕함 등 행함으로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켜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는 구약 시대보다 구원받기가 더 어려울까요?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고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해 나갑니다.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고 죄의 성질도 버리며 성결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버리거나 변화될 수도 없지만, 주님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님을 믿기 전에는 술, 담배를 끊는 것이 힘들었는데,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 버리게 됩니다.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을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고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첫째, 둘째 하늘도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은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중에서도 낙원을 보았는데 이를 차마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 가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간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어 상급이 없는 사람이 가는 곳으로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의 성결을 온전히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국에는 겨우 구원받은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인 낙원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닮아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성도가 들어가는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처소가 있으며,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천국 처소가 결정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처럼 작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울창한 나무와 같이 큰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큰 나무에 많은 새가 깃들이듯이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수많은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의 삶과도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과 기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대해 알수록 이 땅의 것이 헛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을 마치는 순간, 자신의 천국 처소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까지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 곧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한다.
2. 천국을 침노해 빼앗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하늘들’이란?(렘 51:15, 시 68:33)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은 크게 넷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늘’은 이 땅에 속한 육의 세계를 말한다.
‘둘째 하늘’은 ‘공중’(살전 4:17)으로 표현되며,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으로 나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까지 살았던 에덴동산과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신 후 혼인 잔치 하는 공간이 빛의 영역이라면, 악한 영들이 거하는 곳이 어둠의 영역이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들어갈 천국이 있는 곳이다.
낙원에서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가 있다.
‘넷째 하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다.
2025-07-04
제27과맥추절을 지키라
출애굽기 23:14~18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4~18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참고 말씀: 신명기 16:10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맥추절을 지키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0년 동안 광활한 광야의 모래밭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누렇게 익은 밀밭 풍경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씨를 심고 그 열매를 수확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훗날의 일을 미리 아셨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도 전에 그곳에 들어가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로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라 붙여진 이름이고, 오순절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으므로 유대 전통의 오순절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전반기 동안 은혜 주시며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년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을 찾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하는 자녀들이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기를 맞아 모든 감사의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인정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2.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과 영적 의미
민수기 28장 26~31절에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칠칠절 곧 맥추절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축제와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 드렸습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3. 맥추감사제
신명기 16장 16~17절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즉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이 절기에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함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라고 참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예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감사가 마음에서 우러난 참임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게 되지요. 또한 말로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 때보다 마음을 자신의 소중한 것에 담아 드릴 때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귀한 것을 드림으로써 그 감사의 고백에 진액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사랑하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마리아 가정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으로 참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는 가장 소중한 것, 곧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마리아의 행함을 못마땅히 여기는 가룟 유다에게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 12:7~8) 하시며 장래 일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역시 마리아에 비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기를 즐겨합니다. 그런데 혹여 나는 늘 하나님께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은 아니십니까? 또는 은혜를 받을 때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하고 그 은혜를 곧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한결같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감사의 조건으로 여겨 정성 다한 예물을 드리고 계시는지요?
다음으로, 감사를 드릴 때 마음과 더불어 예물을 드리라 하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감사예물을 즐겨 드리는 것은 결국 밭에서 풍성한 소산을 거둔 후 또다시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확을 많이 했어도 금년에 또 심지 않으면 내년에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고 감사로 심고 또 심을 때, 갈수록 더 큰 감사의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한 대로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두는 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범사에 즐겨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30배, 60배, 100배로 주시기 원하는 분입니다. 절기는 물론,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즐겨 감사를 표현하심으로 더욱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 )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를 칠칠절 또는 ( )이라고도 부른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이고, ( )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2. 감사는 ( )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진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말씀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 알고 넘어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맥추절을 지키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40년 동안 광활한 광야의 모래밭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누렇게 익은 밀밭 풍경을 볼 때 참으로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 씨를 심고 그 열매를 수확할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훗날의 일을 미리 아셨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도 전에 그곳에 들어가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1. 맥추절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로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추수가 거의 끝날 무렵 밀 추수가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밀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으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부릅니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라 붙여진 이름이고, 오순절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이 있었으므로 유대 전통의 오순절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고 있으며, 후반기 첫 주일을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전반기 동안 은혜 주시며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매년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것들을 찾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깊이 느끼고 마음에 새길 수 있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하는 자녀들이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절기를 맞아 모든 감사의 조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인정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2.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과 영적 의미
민수기 28장 26~31절에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칠칠절 곧 맥추절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축제와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했습니다. 이때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첫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을 소제로 드렸습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는데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뜻합니다. 나아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나타내지요.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곡식의 첫 열매를 거두게 하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이 살아 다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3. 맥추감사제
신명기 16장 16~17절에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즉 빈손으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마음의 향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이 절기에 빈손으로 보이지 말고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행함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사의 조건을 주셨습니다.”라고 참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예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감사가 마음에서 우러난 참임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게 되지요. 또한 말로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할 때보다 마음을 자신의 소중한 것에 담아 드릴 때 그 향이 더 진해집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여 귀한 것을 드림으로써 그 감사의 고백에 진액이 담기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사랑하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마리아 가정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말씀도 가르쳐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으로 참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지요.
그래서 베다니 마리아는 가장 소중한 것, 곧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마리아의 행함을 못마땅히 여기는 가룟 유다에게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요 12:7~8) 하시며 장래 일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 역시 마리아에 비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진정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의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심기를 즐겨합니다. 그런데 혹여 나는 늘 하나님께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은 아니십니까? 또는 은혜를 받을 때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백하고 그 은혜를 곧 잊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한결같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감사의 조건으로 여겨 정성 다한 예물을 드리고 계시는지요?
다음으로, 감사를 드릴 때 마음과 더불어 예물을 드리라 하시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감사예물을 즐겨 드리는 것은 결국 밭에서 풍성한 소산을 거둔 후 또다시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수확을 많이 했어도 금년에 또 심지 않으면 내년에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고 감사로 심고 또 심을 때, 갈수록 더 큰 감사의 조건으로 이어집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한 대로 많이 심을수록 많이 거두는 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범사에 즐겨 감사를 표현하는 분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30배, 60배, 100배로 주시기 원하는 분입니다. 절기는 물론, 자신의 모든 삶 속에서 즐겨 감사를 표현하심으로 더욱 감사가 넘치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 ) 추수가 시작될 때 새로 추수할 곡물을 주심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를 칠칠절 또는 ( )이라고도 부른다. 칠칠절은 그 시점이 유월절로부터 7주 후이고, ( )은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2. 감사는 ( )으로 표현할 때 온전해지고 그 향이 더 진해진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말씀한 대로 감사도 마찬가지이다.
● 알고 넘어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소제는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