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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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제37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일곱 영(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 참고 말씀: 잠언 8:17 ; 출애굽기 20:6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지요.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 믿음 ) → ( ) → ( 기도 ) → ( ) → ( 계명 지킴 )→ ( ) → ( 사랑 )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알고 넘어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하루에도 감사의 조건이 참으로 많습니다. 사건 사고 많은 세상에서 지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니 염려 걱정할 것이 전혀 없지요. 또 악한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세상에 무수한 질병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 범죄만 하지 않는다면 한 가지도 걸리지 않게 지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지요. 이 외에도 세어 보면 감사의 조건이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며, 아무에게나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시지요.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이 감당하는지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는 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입니다.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지요.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자신의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들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 믿음 ) → ( ) → ( 기도 ) → ( ) → ( 계명 지킴 )→ ( ) → ( 사랑 )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시오.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알고 넘어갑시다!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2026-09-04
제36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기준 - 일곱 영(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4:24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 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아 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신 대로,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들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고기나 야채를 살 때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뛰어 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고백하지만,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한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마음에서 기쁨이 사라져 버리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아 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2장 42절에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 기도는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하신 대로,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을 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이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하여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2026-08-28
제35과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마태복음 15:21~28
읽을말씀 : 마태복음 15:21~28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21~22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원인을 잘 깨달아 가나안 여인처럼 믿음의 행함과 고백으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요.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좋은 것으로 자녀들에게 주고자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을 통해 응답받는 비결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응답을 끌어내린 가나안 여인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를 보면, 흉악히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어떠한 믿음의 행함으로 응답을 받았는지가 잘 나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고통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미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늘 딸로 인해 마음 아파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악귀를 쫓아내며 각색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자기 마을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기뻐 한걸음에 달려가 큰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나서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니 응답해서 보내시라고 요청할 정도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만 돌아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말을 듣고 서운할 법도 한데 여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 절을 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애절하게 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에 더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여인을 개 취급까지 합니다. 이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개 취급 당한 것에 몹시 분개하며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더한 것이라도 감내해 낼 수 있는 겸비한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자신을 철저히 내려놓으며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아뢰었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겸비한 모습으로 끝까지 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응답받으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또한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믿음을 끝까지 내보여야 하지요.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한다 하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 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방해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지요.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욕심이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컨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들어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하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곳에 쓸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4)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히 11:6).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5)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간절히 찾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6)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요? 응답받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로 많은 응답을 끌어내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가나안 여인이 개 취급을 당했을 때 어떠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나요?
아래에 적어 보세요(마태복음 15:27).
( )
2. 다음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욕심으로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한다.
②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면 응답받을 수 없다.
③ 죄를 품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있다.
3. 혹여 여러분 중에 응답받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 알고 넘어갑시다!
‘귀신’이란?
악한 영에 속한 영물이다. 타락한 천사와 달리 창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귀신은 원래 영혼육을 가진 사람이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 중 일부가 특별한 조건에 따라 세상에 나와 귀신이 된다. 귀신은 악한 영의 세계에서 제일 말단으로 마귀의 졸개 노릇을 한다.
교육목표 :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원인을 잘 깨달아 가나안 여인처럼 믿음의 행함과 고백으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어떻게든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입히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이지요.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좋은 것으로 자녀들에게 주고자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15장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을 통해 응답받는 비결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응답을 끌어내린 가나안 여인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를 보면, 흉악히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어떠한 믿음의 행함으로 응답을 받았는지가 잘 나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딸이 더러운 귀신에 들려 고통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미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늘 딸로 인해 마음 아파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악귀를 쫓아내며 각색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시는 예수님께서 바로 자기 마을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기뻐 한걸음에 달려가 큰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나서서 여자가 소리를 지르니 응답해서 보내시라고 요청할 정도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말씀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만 돌아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말을 듣고 서운할 법도 한데 여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께 절을 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애절하게 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에 더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여인을 개 취급까지 합니다. 이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개 취급 당한 것에 몹시 분개하며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더한 것이라도 감내해 낼 수 있는 겸비한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자신을 철저히 내려놓으며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아뢰었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겸비한 모습으로 끝까지 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응답받으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또한 겸손히 자신을 내려놓고 믿음을 끝까지 내보여야 하지요.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을 잘한다 하고, 쉬지 않고 기도한다 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방해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지요.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욕심이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컨대,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들어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믿음을 주지 못하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곳에 쓸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4)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히 11:6).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5)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간절히 찾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6)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요? 응답받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를 하지는 않는지, 자신을 잘 점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로 많은 응답을 끌어내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가나안 여인이 개 취급을 당했을 때 어떠한 믿음의 고백을 하였나요?
아래에 적어 보세요(마태복음 15:27).
( )
2. 다음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욕심으로 기도하면 응답받지 못한다.
②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면 응답받을 수 없다.
③ 죄를 품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있다.
3. 혹여 여러분 중에 응답받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 알고 넘어갑시다!
‘귀신’이란?
악한 영에 속한 영물이다. 타락한 천사와 달리 창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귀신은 원래 영혼육을 가진 사람이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 중 일부가 특별한 조건에 따라 세상에 나와 귀신이 된다. 귀신은 악한 영의 세계에서 제일 말단으로 마귀의 졸개 노릇을 한다.
2026-08-21
제34과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누가복음 18:1~8
읽을말씀 : 누가복음 18:1~8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6:9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 야고보서 5:7
교육목표 : 하나님 자녀로서 항상 기도하되 응답이 더딜 때 낙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알아 응답을 끌어내리게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기도하되 응답이 더디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제목에 따라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응답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나옵니다.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과부처럼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간구하였을 때 응답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에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1. 과부의 기도에 응답해 준 불의한 재판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인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난한 과부가 그를 찾아와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부자가 돈을 싸들고 와서 부탁하면 모를까 가난한 과부의 원한이니 안중에도 없었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늘 찾아와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사정했지요.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몇 번 저러다가 포기하겠지 했는데 끈질기게 찾아와 귀찮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재판관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그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며 결국 그 원한을 풀어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불의한 재판관도 자기를 귀찮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어떠하시겠냐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7~8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말씀하지요.
혹여 여러분 중에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습니까? 아니면 응답이 더딥니까?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셨습니다.
2.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결코 계명이 무겁다, 버겁다고 느끼지 않으며 설령 응답이 더뎌도 낙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응답이 더딘 이유는 기도 양이 부족하거나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 양을 채우고 그때를 감사함으로 기다려야 하지요. 어떤 경우는 믿음으로 구하지 못하고 의심해서 응답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확실한 기대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실까?’라고 의심한다면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당장 기도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이 응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신 것입니다.
3.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됩니다. 만약 농부가 씨앗을 심어 놓고 왜 싹이 나지 않느냐고 수시로 땅을 파헤친다면 열매를 따기 어렵습니다. 기도 역시 응답 받기까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조국의 장래를 이상 중에 보고 21일 동안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이상을 깨닫고자 좋은 떡이나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기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작정하여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첫날에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 응답을 가지고 가는 천사를 방해하여 21일째가 돼서야 응답을 가져 올 수 있었지요(단 10:12~14).
이처럼 다니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보내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온 천사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기도를 올리시는지요?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다니엘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그 이상을 풀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첫날 듣고 응답해 주셨습니다(단 10:1~12). 그러나 악한 영들의 방해로 응답이 오기까지는 21일이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루, 이틀, 사흘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기도해 놓고 응답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고 낙심해 버립니다. 이는 그만큼 믿음이 적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때에 응답을 해 주실지 모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고 분명히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5장 24절에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하신 대로이지요.
다니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인내하며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만일 응답이 없다고 낙망하고 포기한다면 믿음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현실을 보지 않고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신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간구함으로 항상 열매 맺고 응답받는 복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불의한 재판관이 왜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 주었을까요?
( )
2. 다음 성경 구절 중 다른 내용을 고르시오.
① 마가복음 11:24 ② 야고보서 1:6~7
③ 갈라디아서 6:9 ④ 요한복음 1:1
3. 다니엘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을 때 며칠 만에 응답받을 수 있었나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미가엘 천사장’
영의 세계에서 이 땅의 장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천사를 천사장이라 한다. 특별히 천사장들 중에서 몇은 그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가브리엘과 미가엘 천사장이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감당했다. 이와 달리 미가엘 천사장은 하늘의 군대장관으로서 악한 영의 세계가 만들어진 후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지휘하며 때로는 직접 나서서 어둠의 진을 깨뜨렸다.
교육목표 : 하나님 자녀로서 항상 기도하되 응답이 더딜 때 낙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알아 응답을 끌어내리게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항상 기도하되 응답이 더디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제목에 따라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 주시는 것도 있지만, 응답받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 비유가 나옵니다. 아무리 불의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과부처럼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간구하였을 때 응답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에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1. 과부의 기도에 응답해 준 불의한 재판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인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가난한 과부가 그를 찾아와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재판관은 부자가 돈을 싸들고 와서 부탁하면 모를까 가난한 과부의 원한이니 안중에도 없었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늘 찾아와 자기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사정했지요.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몇 번 저러다가 포기하겠지 했는데 끈질기게 찾아와 귀찮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재판관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그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며 결국 그 원한을 풀어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불의한 재판관도 자기를 귀찮게 하는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는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어떠하시겠냐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8장 7~8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말씀하지요.
혹여 여러분 중에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습니까? 아니면 응답이 더딥니까?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통해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셨습니다.
2.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왜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먼저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결코 계명이 무겁다, 버겁다고 느끼지 않으며 설령 응답이 더뎌도 낙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응답이 더딘 이유는 기도 양이 부족하거나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기도 양을 채우고 그때를 감사함으로 기다려야 하지요. 어떤 경우는 믿음으로 구하지 못하고 의심해서 응답을 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 명심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확실한 기대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과연 이루어질까?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실까?’라고 의심한다면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당장 기도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이 응답의 비결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신 것입니다.
3.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두게 됩니다. 만약 농부가 씨앗을 심어 놓고 왜 싹이 나지 않느냐고 수시로 땅을 파헤친다면 열매를 따기 어렵습니다. 기도 역시 응답 받기까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조국의 장래를 이상 중에 보고 21일 동안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이상을 깨닫고자 좋은 떡이나 고기와 포도주를 먹지 않고 기름도 바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작정하여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첫날에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 응답을 가지고 가는 천사를 방해하여 21일째가 돼서야 응답을 가져 올 수 있었지요(단 10:12~14).
이처럼 다니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보내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온 천사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기도를 올리시는지요?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다니엘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그 이상을 풀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첫날 듣고 응답해 주셨습니다(단 10:1~12). 그러나 악한 영들의 방해로 응답이 오기까지는 21일이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루, 이틀, 사흘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기도해 놓고 응답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고 낙심해 버립니다. 이는 그만큼 믿음이 적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때에 응답을 해 주실지 모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듣고 분명히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5장 24절에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하신 대로이지요.
다니엘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인내하며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만일 응답이 없다고 낙망하고 포기한다면 믿음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현실을 보지 않고 반드시 응답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은 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신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간구함으로 항상 열매 맺고 응답받는 복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불의한 재판관이 왜 가난한 과부의 간청을 들어 주었을까요?
( )
2. 다음 성경 구절 중 다른 내용을 고르시오.
① 마가복음 11:24 ② 야고보서 1:6~7
③ 갈라디아서 6:9 ④ 요한복음 1:1
3. 다니엘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을 때 며칠 만에 응답받을 수 있었나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미가엘 천사장’
영의 세계에서 이 땅의 장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천사를 천사장이라 한다. 특별히 천사장들 중에서 몇은 그 이름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가브리엘과 미가엘 천사장이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감당했다. 이와 달리 미가엘 천사장은 하늘의 군대장관으로서 악한 영의 세계가 만들어진 후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지휘하며 때로는 직접 나서서 어둠의 진을 깨뜨렸다.
2026-08-14
제33과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예레미야 33:3
읽을말씀 : 예레미야 33:3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 할 수가 없지요. 또한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을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합니다. 또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 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듯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리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를 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루어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으로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넷째, ( )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영적인 믿음은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으며,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 할 수가 없지요. 또한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을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말합니다. 또 “하나님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느냐?”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이 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 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듯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아 버리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를 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루어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으로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넷째, ( )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영적인 믿음은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으며,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2026-08-07
제32과올바른 기도의 순서
마태복음 6:31~33
읽을말씀 : 마태복음 6:31~3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시편 66:18 ; 마태복음 6:26~28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과연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먼저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해야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를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런 뒤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를 지켜 주신 것, 좋은 일을 주신 것, 궂은일을 당했을 때도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를 올리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에는 지교회 담임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요(마 5:48 ; 벧전 1:16 ; 살전 5:23 ; 요삼 2). 그런데 어떤 성도는 “여러 사명을 감당하느라 바빴으니 이젠 성결을 이루기 위해 기도만 해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에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나열해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써 보세요.
( )
3. 마태복음 6장 33절을 암송하여 써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과연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먼저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해야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도를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런 뒤에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를 지켜 주신 것, 좋은 일을 주신 것, 궂은일을 당했을 때도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를 올리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에는 지교회 담임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시지요(마 5:48 ; 벧전 1:16 ; 살전 5:23 ; 요삼 2). 그런데 어떤 성도는 “여러 사명을 감당하느라 바빴으니 이젠 성결을 이루기 위해 기도만 해야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에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보면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나열해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써 보세요.
( )
3. 마태복음 6장 33절을 암송하여 써보세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2026-07-31
제31과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누가복음 22:39~4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2:39~44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2:44 |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최고의 기도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드림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곤조곤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면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지요. 기도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요령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이는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고백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주기도문 도입부분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를 받는 대상이 나옵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OOO에게”라고 쓰는 것과 같지요.
그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씀하지요.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지요. 이때 비로소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 돌리지요. 이처럼 주기도문에는 기도하는 요령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2. 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 아들이신데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알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리며 모든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떠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하면 위장기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듯이 우리가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지요.
만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자칫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영적 힘이 축적되어 있으면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매우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지켜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나 윗사람 앞에서 무엇을 구할 때 바른 몸가짐으로 공손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 구할 수 없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행 20:36)이나 스데반 집사(행 7:60) 등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도 있습니다. 그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요. 처음에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 수 있지만 5분, 10분 시간을 늘려 가다 보면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구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겠습니다.”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사업이 번창하지 않습니까? 신속히 물질의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욕심과 사심을 갖고 기도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지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 선한 기도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당시 겟세마네 동산은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땀방울이 피 방울같이 되었다는 데에서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응답은 물론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마치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배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거나 밤늦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할 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2.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적어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 사역을 맡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그런데 스데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이 마음에 찔려 돌로 쳐서 스데반을 죽인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한 후 영혼이 떠났다.
교육목표 : 최고의 기도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드림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조곤조곤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면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지요. 기도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요령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이는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고백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주기도문 도입부분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를 받는 대상이 나옵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OOO에게”라고 쓰는 것과 같지요.
그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씀하지요.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선하신 뜻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지요. 이때 비로소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 돌리지요. 이처럼 주기도문에는 기도하는 요령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2. 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 아들이신데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알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리며 모든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떠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하면 위장기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듯이 우리가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지요.
만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자칫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영적 힘이 축적되어 있으면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매우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지켜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나 윗사람 앞에서 무엇을 구할 때 바른 몸가짐으로 공손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 구할 수 없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행 20:36)이나 스데반 집사(행 7:60) 등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도 있습니다. 그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요. 처음에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힘들 수 있지만 5분, 10분 시간을 늘려 가다 보면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구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겠습니다.”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사업이 번창하지 않습니까? 신속히 물질의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욕심과 사심을 갖고 기도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지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 선한 기도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당시 겟세마네 동산은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땀방울이 피 방울같이 되었다는 데에서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응답은 물론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한 일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마치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배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거나 밤늦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할 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2.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적어 보세요.
● 알고 넘어갑시다!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 사역을 맡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그런데 스데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이 마음에 찔려 돌로 쳐서 스데반을 죽인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한 후 영혼이 떠났다.
2026-07-24
제30과성령을 받은 증거
사도행전 19:1~7
읽을말씀 : 사도행전 19:1~7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22 | 참고 말씀: 사도행전 2:38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변화된 증거들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게 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증거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
성령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똑같이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찬양과 기도, 예배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받은 증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 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지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지요.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중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즐겨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불같이 기도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림으로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으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행하기에 더욱 힘씀으로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지요.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않지요. 어찌하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까 더욱 궁구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니 믿음이 생기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쳐 나지요. 주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 받은 증거가 따르지요.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알기 때문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게 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지요.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갑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또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한 사람으로,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지요. 어찌하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성령 받은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를 써 보세요.
①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③
④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간다.
⑥
⑦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째,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유형
둘째, 자기 육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유형(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셋째, 무조건 순종하는 유형(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넷째, 명령하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유형(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변화된 증거들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게 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증거가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
성령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똑같이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찬양과 기도, 예배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받은 증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 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지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지요.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중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즐겨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불같이 기도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림으로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십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으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행하기에 더욱 힘씀으로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지요.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않지요. 어찌하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까 더욱 궁구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니 믿음이 생기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쳐 나지요. 주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 받은 증거가 따르지요.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을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알기 때문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게 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지요.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갑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또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한 사람으로,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지요. 어찌하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성령 받은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를 써 보세요.
①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③
④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간다.
⑥
⑦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째,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유형
둘째, 자기 육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유형(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셋째, 무조건 순종하는 유형(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넷째, 명령하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유형(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2026-07-17
제29과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요한복음 3:3~8
읽을말씀 : 요한복음 3:3~8 | 외울말씀 : 요한복음 3:5 | 참고 말씀: 로마서 8:26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 돌이키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경계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1. 영적인 거듭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으며,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호되게 책망하셨지요(눅 11:39~43).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실상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였음에도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 여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육적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보면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도 영적으로 무지한 그를 깨우쳐 주고자 하셨지요. 진리에 갈급한 그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답변하셨지요(요 3: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비진리 가운데 살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지요. 거짓말 잘하던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혈기와 미움이 많던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치료를 받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인 거듭남은 사실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건입니다. 육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우리 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주인이므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불멸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 내세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축복을 누려야 하지요.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죽은 영이 살아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구원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 곧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죄이고 악이며, 버려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 하나하나 버려 나갈 때 진리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워가는 것이 곧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죽은 영을 살리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연합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히 10:22).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함을 뜻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전히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④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산헤드린 공회’의원이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간혹 사람들 중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 돌이키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성령이 소멸되어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경계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1. 영적인 거듭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으며,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호되게 책망하셨지요(눅 11:39~43).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실상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였음에도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 여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육적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보면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도 영적으로 무지한 그를 깨우쳐 주고자 하셨지요. 진리에 갈급한 그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답변하셨지요(요 3: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비진리 가운데 살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지요. 거짓말 잘하던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혈기와 미움이 많던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치료를 받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인 거듭남은 사실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건입니다. 육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우리 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주인이므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불멸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 내세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축복을 누려야 하지요.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죽은 영이 살아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구원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 곧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을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죄이고 악이며, 버려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 하나하나 버려 나갈 때 진리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워가는 것이 곧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죽은 영을 살리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연합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히 10:22).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함을 뜻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전히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④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산헤드린 공회’의원이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
● 알고 넘어갑시다!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2026-07-10
제28과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
로마서 10:13~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3~15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2~14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셨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아 나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을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여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입니다.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지요.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내지요.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1) 구원받을 믿음:
2) 구원받은 믿음: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알고 넘어갑시다!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 자리에 머물고 있다.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셨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아 나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을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여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입니다.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지요.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내지요.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1) 구원받을 믿음:
2) 구원받은 믿음: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알고 넘어갑시다!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 자리에 머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