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부 잘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인 ‘잡념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능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공부 잘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인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더라도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환경을 다스리는 사람이 되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공부 잘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인 잡념 없이 공부에 집중하는 능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집중력의 필요성
아무리 책상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집중하지 않으면 공부 성과가 나지 않습니다. 잡념 속에서 공부하는 일은 마치 수없이 화살을 쏘아 대지만 표적을 하나도 맞히지 못하는 것처럼 헛된 일일 뿐이지요. 그러므로 이제 열심히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잡념 없이 집중하는 훈련을 반드시 쌓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 학생들뿐 아니라 장년 성도님들에게도 꼭 필요한 훈련입니다.
특히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 잡념 없이 집중하여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잡념 속에 중언부언 기도하거나 졸음에 빠지면 아무리 매일 성전에 나와 기도한다고 해도 믿음의 성장도, 응답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할 시간에 마음과 생각이 잡념 속을 헤매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 수가 없지요. 그러면 매일, 또는 매주 투자하는 그 수많은 시간이 얼마나 헛됩니까.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만에 끝낼 일도 잡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이틀, 사흘도 붙잡고 있어야 하지요. 무엇보다 이 잡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잡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떠오릅니다.
2. 세상 것들이 잡념을 부르는 이유
‘잡념’이란 간단히 말해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생각들입니다. 학생들은 주로 재미있는 오락이나 멋있는 연예인, 이성 친구 등 세상 것들이 잡념으로 떠올라서 고민할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 것들이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서 비롯된 모든 것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온갖 비진리요, 육이지요.
그렇다면 왜 세상 것들이 잡념을 부를까요? 세상 것들은 대체로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고 들을 때 강한 느낌과 함께 기억장치에 입력되기가 쉽지요. 강한 느낌과 함께 입력된 것일수록 기억장치 속에 깊이 심겨지고 오래갑니다. 비유를 들면 논에 모를 심을 때 모를 얕게 심으면 물결이 일 때 쉽게 뽑혀 버립니다. 반대로 흙 속 깊이 심으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잘 자라지요. 마찬가지로 별 느낌 없이 보고 들은 것은 깊이 심겨지지 않기 때문에 설령 기억에 남아도 하루, 이틀, 사흘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금방 빠져나갑니다. 기억장치에 깊이 심긴 지식들은 오래 남지요. 바로 ‘느낌’이 기억장치에 지식을 깊게 심는 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전쟁을 겪은 분들 중에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날 날씨는 어땠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지요. 그 일을 잊고 지내다가도 그 경험과 조금이라도 상관있는 것을 접하면 그때의 일이 빈번하게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 중에는 6월이 되면 6·25 곧 한국전쟁이 터져서 피난 가던 날이 떠오른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세상 것을 접할 때 별 느낌이 없었다면 보거나 들은 것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반면에 어떤 강한 느낌을 가졌다면 그것이 잘 기억되고 나중에 다시 떠오릅니다. 또 우리 학생들은 두뇌의 작용이 활발해서 대부분 어른들보다 기억을 잘합니다. 특히 공부할 때 지루하게 느껴지면 이전에 좋은 느낌과 함께 입력한 세상 것들이 더 잘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 것들이 어떻게 잡념이 되는지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지요.
3. 잡념의 유형
첫째, 세상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잡념을 낳는 경우입니다.
호기심이란 새롭고 신기한 것에 이끌리는 마음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호기심이 많을 나이입니다. 어른들에 비해 세상에 처음 접하는 것도 많고 신기한 것도 많지요. 호기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 비진리의 것들에 호기심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영화에서 연인들이 스킨십하는 장면을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큰 충격을 받았지요. 그 후 수업 시간, 공부 시간 할 것 없이 자꾸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성과 스킨십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발동하지요.
여러분이 이렇게 비진리의 것에 호기심을 가지면 원수 마귀 사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이때다!’ 하고 생각 속에 틈타 호기심이 더 왕성해지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또 찾아보게 되지요.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 영상들을 더 찾아서 봅니다. 그럴수록 호기심이 점점 자라고, 그러다가 ‘나도 이성 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다. 한 번쯤 경험 삼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런 강한 욕구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잡초 덩굴이 쭉쭉 뻗어나가듯이 또 다른 잡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나도 연예인처럼 멋있게 꾸미면 이성 친구들이 관심을 가져 줄까? 친구가 예쁜 옷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많이 알던데, 나는 부모님이 용돈을 많이 주지 않으시니 갖고 싶은 것도 사지 못하니 힘들다.’ 이런 잡념으로 발전합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과 생각이 공부에서 점점 더 멀어지지요. 더구나 이전에 이성과 스킨십을 가져본 학생은 그와 비슷한 장면을 보면 이전 기억이 느낌과 함께 되살아납니다. ‘그 느낌을 다시 가져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강한 충동이 일기도 하지요.
몇 살 때 그런 일을 겪었느냐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릅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기가 각기 다르지요. 신체가 성장한 만큼, 정신연령이 높은 만큼 더 강한 느낌이 남았을 것입니다. 또는 그 당시에는 어려서 별 느낌이 없었어도 어느 정도 성장한 후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 호기심이나 욕구를 이기지 못하는 경우 학생의 본분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범죄 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우연히 음란물을 접했는데 그 후 계속해서 접하며 호기심을 키워오다가 청소년기에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들도 있지요.
이처럼 세상 것들에 대한 호기심은 잡념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으면 안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세상 정욕을 취하면 멋있어 보이고 즐거운 것처럼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세상 것을 취하면 그 당시에는 혹 좋을지 몰라도 결국 허무함과 공허함만 남을 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사망으로 갈 수도 있지요.
둘째, ‘세상 오락을 즐기며 재밌게 놀고 싶다.’는 마음이 잡념을 부릅니다.
공부가 지루하게 느껴질수록 이런 마음이 더 간절하지요. 이런 유의 잡념들은 재미, 즐거움 등 세상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학생들은 게임 할 때의 쾌감을 또 느끼고 싶어 합니다. 심한 경우 책의 글씨가 쳐부숴야 할 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공부방이 게임 속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친구와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책 한 장도 채 보지 못하고 딴생각에 빠져있거나 필기도구 같은 것을 만지작거리며 딴청만 부립니다. 혹여 이런 모습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면 이제 잡념의 실체를 알았으니 잘 물리쳐서 달라진 여러분의 모습을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이런 세상의 정욕적인 것, 쾌락적인 것들만 잡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학생들은 비진리의 감정 때문에 마음의 평정이 깨지면서 잡념에 시달립니다. 친구들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관계, 가정불화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지요.
간혹 “우리 자녀가 예전에는 공부를 잘했는데 교회를 다니고 나서 성적이 떨어졌다.”며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계십니까? 본문, 잠언 9장 10절 전반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나서 오히려 공부를 더 못할 수 있겠습니까.
간혹 그런 학생들이 있는 연유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 근심을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비록 어려도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는 만큼 자신의 죄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마음의 연단이 따르므로 마음 안에서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집중력이 떨어지므로 공부에 전력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이 이보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적이 떨어집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는데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이성 친구를 만나러 교회에 오거나 교회에 왔다가 집에 가야 할 시간에 친구들과 놀러 갑니다. 교회 나가는 것을 핑계로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성적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교회에 나오는 학생, 충성하는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이런 학생이라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가 있습니다.
잡념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다음 시간에 이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 앞에 TV가 두 대 있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들이 나온다면 둘 다 보실 수 있겠습니까? 번갈아 가면서 보면 각각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쪽 TV를 보는 동안에 다른 쪽 TV는 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부와 잡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 공부할 내용과 잡념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는 없지요. 둘 중 하나만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학생 시절은 잠시 잠깐입니다. 더구나 입시를 코앞에 둔 학생들은 공부할 시간이 얼마 없지요. 신앙생활에서도 잡념으로 인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못하며 중심 다한 찬양과 기도를 드리지 못하니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또 장년 성도님들도 사회생활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이때 직장생활과 함께 공부하려면 틈을 내야 하니 시간이 넉넉할 리 없지요. 그러니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잡념은 하루속히 다 내쫓고 유익한 지식만 가득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지식도 재산에 속합니다. 그러니 이롭고 유용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인정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히 쓰임 받으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6-05-14 오후 10:19:43 Posted
2026-06-15 오후 10:34:10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