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

>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니 신생아의 호흡곤란증과 황달이 깨끗이 사라졌어요 - 최병술 집사

날짜 1999년 8월 29일 일요일 출처 조회수 8070
실패만 거듭되는 삶 속에서 뉴스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저는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특별한 기술 없이 공장과 농장 등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보란 듯이 잘 살아 한 평생 고생만 하신 부모님께 효도해 보겠다는 꿈이 깨어지면서 현실의 벽은 높고 험난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희망도 없이 삶의 목적마저 상실해 가던 1991년 5월, 고향 친구 박종미 집사님의 전도로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서서히 되찾게 되었고 열심히 살아 보고자 했습니다.
이것도 잠시, 물질의 문제가 저를 유혹하였습니다. 딸기를 재배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이모부의 말에 솔깃해 아내 현계숙 집사와 함께 전남 담양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딸기 재배에 초년생이었던 저희 부부는 돈을 벌기는커녕 원금도 제대로 건지지 못한 채 실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와 막막한 현실 앞에 딸기밭 두덩에 주저앉아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참기쁨을 맛보았으나 뉴스어느 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불현듯 큰 돈을 벌고자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아! 바로 그것 때문이었구나!"
아내에게 고생만 시키고 전세금, 융자금도 다 날린 채 9개월 만에 상경한 저는 큰 깨달음과 함께 다시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된 노동일을 하면서도 이 세상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으리만치 기쁨이 넘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1995년 초가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교회 사찰로 근무할 수 있는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교회 안팎을 구석구석 쓸고 닦고 온실에 있는 화분을 관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욱 느낄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성도님들이 깨끗하게 정리정돈된 성전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이나 정성껏 가꿔온 화분들이 귀한 단에 드려져 성도님들이 기뻐하시는 모습 또한 저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체험도 했습니다. 딸 찬미의 목줄기 옆과 양쪽 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바늘귀만한 구멍을 두 개나 발견한 것입니다. 그 구멍에서 진물이 흘러내려 잘못하면 파상풍에 걸려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부부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 기도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구멍에서 흐르는 진물이 멈추는 치료의 역사를 친히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니 둘째 딸 출산시 큰 시험이 닥쳐와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왜 이리 간사한지,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언제부턴가 충만함과 기쁨이 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작년 11월부터는 이런저런 핑계로 열심이 식어져 가고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니 그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온전히 감사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6일, 큰 시험이 저희 부부에게 닥쳐왔습니다. 아내가 응암동에 있는 도티기념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 딸을 낳게 되었는데, 회복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저에게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기가 심한 호흡곤란으로 위험합니다. 잘못하면 뇌에 손상을 주어 정신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황급히 아기가 있는 분만실로 들어가 보니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호흡기를 의지한 채 실낱같은 호흡을 힘겹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붉어야 할 아기의 몸이 파랗게 변해 있었지요.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위험할 것 같으니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되겠습니다."
저는 촌각을 다투는 듯한 의사의 말에 너무나 당황하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된 신앙을 깨닫고

얼마 후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는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합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를 받기 위해 휴대폰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내도 기도를 받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내는 몸이 무겁다는 이유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은 일, 또 아들을 낳지 못하자 감사하지 못했던 것 등을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께서는 "호흡이 다소 호전되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곁에 있던 처형은 빨리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저희 부부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지요.

믿음으로 손수건에 기도를 받아 뉴스마침, 본교회에서는 매주 금요철야예배 전과 주일 저녁예배 후에 「이재록 목사 환자를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날이 금요일이라 금요철야예배 전에 당회장 목사님의 기도를 직접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인큐베이터에 있었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유아용 가아제 손수건에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면 치료받을 수 있겠다는 믿음으로 교회로 달려가 환자 등록을 마치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손수건에 권능을 불어 넣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뜨겁게 기도해 주실 때, 저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치료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병원에 있던 아내의 마음도 평안해졌고, 아이의 호흡 상태도 더욱 좋아졌다고 합니다.

아기에게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니 정상이 되고

금요철야 예배를 마친 8월 7일 새벽, 기도받은 가아제 손수건을 가지고 병원으로 가서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아이의 배 위에 얹고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를 "아멘. 아멘" 하며 받았습니다.
그 날 점심 식사를 막 끝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담당 간호원이 "현계숙씨 보호자님, 아기의 호흡 상태가 좋아졌어요. 일반 병실로 옮겨도 되겠네요" 하는 것이 아닙니까. 할렐루야!
이뿐이 아니었습니다. 퇴원하기 전 날인 8월 12일 목요일 오후에는 아기의 황달 수치가 15.9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황달로 인해 혈액이 파괴되기 때문에 수치가 16이나 17까지 올라가게 되면 몸의 피를 전부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일을 겪으면서 영적인 믿음이 생긴 저희 부부는 조금도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즉시 믿음으로 당회장님께 기도받은 손수건을 아이의 몸 위에 얹고 「음성전화사서함 환자기도」를 받았지요. 그랬더니 아이의 몸은 정상이 되었고, 출생 9일만에 아주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담당자 분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이내 함께 기뻐해 주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출산을 통해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진액을 다해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