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 1032 PAGE : 2/34
2020-08-14
제33과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1)
잠언 8:13
읽을말씀 : 잠언 8:13 | 외울말씀 : 출애굽기 15:26 | 참고 말씀: 이사야 59: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2020-08-07
제32과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
시편 37:4
읽을말씀 : 시편 37: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1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020-07-31
제31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8:41~45
읽을말씀 : 열왕기상 18:41~4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4:48 | 고 말씀: 열왕기하 2:11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2020-07-24
제30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
사도행전 10:1~8
읽을말씀 : 사도행전 10:1~8 | 외울말씀 : 잠언 8:13 | 참고 말씀: 사도행전 9장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2020-07-17
제29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
요한일서 5:14~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5:14~1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야고보서 1:7~8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2020-07-10
제28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빌립보서 4:6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2020-07-03
제27과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맥추절)
요한복음 4:24
읽을말씀 : 요한복음 4:24 | 외울말씀 : 이사야 55:9 l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25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2020-06-26
제26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2020-06-19
제25과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야고보서 1:6~8
읽을말씀 : 야고보서 1:6~8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22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2020-06-12
제24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2)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시편 66:18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
2020-06-05
제23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1)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7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3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2020-05-29
제22과성령
요한복음 1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6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6~1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2020-05-22
제21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2)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6:17~18 l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1~12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2020-05-15
제20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1)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15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5:39~41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2020-05-08
제19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2)
창세기 13:8~9
읽을말씀 : 창세기 13:8~9 | 외울말씀 : 창세기 13:9 l 참고 말씀: 시편 37:11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2020-05-01
제18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1)
창세기 22:11~14
읽을말씀 : 창세기 22:11~14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9 ㅣ 참고 말씀: 창세기 12:1~2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
2020-04-24
제17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2)
다니엘 6:21~23
읽을말씀 : 다니엘 6:21~23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2:23 l 참고 말씀: 다니엘 6장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킴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이 어떠한 믿음과 행함을 내보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1.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지킴 받은 다니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합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사랑을 받자 이를 시기한 무리들은 국사에 대하여 그를 고소할 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틈,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단 6:4).
이에 악한 무리들은 계략을 꾸며 왕에게 금령을 정하도록 합니다. 바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는 내용이었지요. 이는 다니엘이 하루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모르는 왕은 단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일로 여겨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렸습니다.
다니엘은 이를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단 6:10).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나님만을 섬겼습니다. 다니엘을 고소하려는 무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왕에게 알렸습니다. 그제야 왕은 놀라며 금령을 제정한 일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인을 찍은 금령이 반포된 후이니 왕으로서도 번복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어찌하든 다니엘을 구하려고 종일 근심하며 애를 썼지요. 왕이 머뭇거리자 악한 무리들은 또다시 그 앞에 나아와 신속히 규례대로 시행할 것을 종용합니다.
왕은 할 수 없이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르기를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서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다니엘이 평소에 왕에게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려 드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매사에 믿음직한 행실을 보였기에 그가 하나님에 대해 전하면 왕도 그의 말을 심중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진 그날, 왕은 밤이 다하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쳤으며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왕은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라고 슬피 외칩니다. 상식대로라면 그는 이미 생명을 잃고 그 시신마저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밥이 되었을 상황입니다. 왕이 이렇게 외친 것은 다니엘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왕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서운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사자 굴에 던져진 뒤, 왕이 얼마나 가슴 아파하며 슬퍼할까를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같이 달려온 왕에게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여 먼저는 왕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2. 위대한 믿음의 승리자 다니엘
다리오왕은 심히 기뻐하며 그를 굴에서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밥이 되기는커녕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다니엘의 믿음의 승리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한 그는 사자 굴에서 살아나 이방인에게까지 하나님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왕은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무리들을 끌어와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굴 밑에 닿기도 전에 사자가 움켜서 뼈까지도 부서뜨렸습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렸습니다(단 6:26~27).
얼마나 위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그가 얼마나 참되고 진실했는지가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금령에 어인이 찍힌 사실을 알고도 평소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할 때 얼마나 감동하시고 그 기도의 향을 기쁘게 받으셨겠는지요?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인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사자 굴에 던짐 받은 다니엘은 어떠한 믿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을까요?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다니엘은 나라의 금령을 어기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의 생각이나 지혜를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모함하는 무리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생각을 동원하면 30일 동안 내려진 금령이니 잠시 기도를 쉬거나 몰래 기도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둘째, 기도하는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도 쉬는 죄(삼상 12:23)를 범치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도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하며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눅 22:40). 이처럼 다니엘은 쉬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와 같이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법을 좇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면 이는 승리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니 감사하고, 설령 사자 밥이 된다 해도 영원히 하나님 품에 안겨 살 것이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넷째, 아무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 함도, 허물도 없었기 때문에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을 수 없었다 했으니 얼마나 정결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신임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악한 무리의 궤계를 알려 그 계략을 분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 알리지 않고 악한 무리에게 대항하지도 않았습니다. 설령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로 인해 생명을 잃을지언정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자기를 사자 굴에 던진 왕에게 조금도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지 않는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죄로 인하여 찾아온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지만 다니엘은 이처럼 죄가 없었기에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축복을 더하여 마음껏 영광 돌리게 하셨지요. 여러분도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영의 호흡이니 쉬지 않고 해야 한다. 시험 환난이 왔을 때는 물론 평안할 때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 )해야 한다. 다니엘은 쉬지 않고 ( )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2. 다니엘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 )했기에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으며 하나님께 구했다.
3.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좇아 행하는 ( )을 지녔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셨던 다니엘의 선’
① 자기를 모함하여 죽이려는 상대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②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③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었다.
2020-04-17
제16과오직 하나님을 의뢰한 다니엘 (1)
다니엘 1:8~20
읽을말씀 : 다니엘 1:8~20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레위기 11장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하며 세상 어떠한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다니엘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포로의 신분과 상관없이 이방 족속 가운데 뛰어난 자가 되어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을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결과였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였기에 포로 신분인데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철저히 싫어한 다니엘
느부갓네살왕은 점령한 속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려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때 발탁된 소년들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여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로, 왕은 이들에게 갈대아 학문을 배우며 왕의 진미를 먹게 하였습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런 일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 우려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진미에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음식이나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으로 만든 음식들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위기나 성경 곳곳에 보면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스러운 짐승들은 먹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행위적인 율법의 준행이 중요했기에 우상의 제물이나 가증한 식물(食物)을 먹으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범죄함이 되었지요.
이에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대신에 채식을 할 수 있도록 환관장에게 청하였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적으로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보고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소년들과 얼굴빛을 비교하여 보라 했지요.
과연 다니엘의 제안대로 하였을 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은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 왕의 총애를 받는 총리가 된 다니엘
하나님을 경외하여 계명을 좇아 자신들을 지키고자 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신 대로이지요. 그 결과 이들은 소년들 중에서 왕을 모시는 자들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왕에게도 인정받았는데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했습니다(단 1:20).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지식에 지식을 더하게 하심으로, 배도 아니고 십 배나 나았으니 얼마나 뛰어납니까?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포로의 신분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상황에서 왕의 진미를 단호히 거절할 수 있었겠는지요? 이는 당시 상황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포로 신세이니 이것저것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며, 더구나 왕이 지정해 주는 음식을 내 뜻에 맞지 않다고 해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하신 뜻 가운데 우상의 제물과 가증한 식물을 금하셨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당연히 취하면 안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증하다’ 하신 짐승들 안에는 악한 기가 담겨 있어서 그것을 먹는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게 되지요. 예를 들어, 한방에서는 몸에 상처가 나고 곪았을 때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더 성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온전히 행하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선한 사람입니다.
3.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없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중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여기며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성경 곳곳에서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도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를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적인 선을 앞세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완전히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한다며 무수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이끌며 우상과 타협하게 만들지요.
혹여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인간적인 선으로 하나님의 선을 거스르는 일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는데, 자기 보기에 선의 잣대로 판단하여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할 때에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여기고 지나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법이요, 명령입니다.
4. 교회 안에서 지켜야 할 분야
교회 안에서 남녀 간에 지켜야 할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으면 안 된다 했고, 남녀 간에 악수도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하고 있지요. 사람이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 육의 속성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그 육이 발동하여 범죄할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철저히 금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분야에서도 얼마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마음으로 깨달아 준행하고 있는지요?
또한 기관이나 각 부서의 회계는 개인 사정이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의 재정을 임의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쓰고 채워 넣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소액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재정에 손을 대었다면 이는 도적질할 수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면 구원과도 상관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분야에서 하나님께서 엄히 경계하신 것들을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준행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준행한다 할지라도 속마음은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기쁨과 감사함으로 준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만 마음 한 편에는 두려움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지키려 하니 너무나 힘들게 지켜 나가는 사람도 있지요. 더구나 아예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의 신분인데도 좋은 대우를 마다하고 굳이 채식을 했던 그 중심의 선을 깨달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철저히 싫어하고, 기뻐하시는 것만 지켜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을 알면서도‘상황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하니 하나님께서 ( )하시는 것은 자신도 철저히 싫어하는 마음이었다.
2. 하나님께서“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하실 때 그것은 결국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 )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간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통일왕국은 르호보암왕 때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왕상 11:26~36). 이후 북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사마리아가 함락되어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B.C. 586년 바벨론 제국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공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멸망했다.
느부갓네살왕은 여호야김이 유다 왕국을 통치하던 때에 1차 침공을 하였는데(B.C. 605년) 그때에 성전 보물과 함께 왕족과 귀족 일부를 바벨론으로 데려갔다. 다니엘은 이때 잡혀간 포로 중의 한 사람이다.
2020-04-10
제15과부활
사도행전 1:11
읽을말씀 : 사도행전 1:11 | 외울말씀 : 로마서 10:9 l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20-04-03
제14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2)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로마서 5:3 l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22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으로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며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셋째, 참 믿음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이나 주위 사람들을 항상 성실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셉을 축복하심으로 그는 가는 곳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뿐 아니라 감옥에서도 인정받아 옥중의 제반 사무를 감당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행한 결과 마침내 요셉의 꿈이 현실로 이뤄집니다. 어느 날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범죄하여 그가 있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꿉니다.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대로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고 있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렸지요.
이어서 바로는 다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왕은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해석하도록 해 보았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과거에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이 떠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추천으로 왕에게 간 요셉은 아무도 풀지 못한 꿈을 시원스럽게 해석해 줍니다. 즉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 이삭은 풍년 다음에 이어질 일곱 해의 흉년을 의미함을 알려 주지요. 그리고 흉년이 너무 심해 이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이며, 꿈을 두 번 꿨으니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합니다.
이처럼 명쾌하게 꿈을 해석해 준 요셉은 대처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먼저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책임자로 세우고, 나라에 여러 관리를 두어 일곱 해 풍년 동안 수확한 곡물의 5분의 1을 거두어 저장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히 풍년에 곡식을 거두어 흉년에 대비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곡물을 얼마나 저장해야 할지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지요.
왕은 요셉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하며 그를 왕 다음가는 권세자로 세웠습니다. 이는 그가 종으로 팔려온 지 13년 만의 일입니다.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고, 범사에 감사함으로 성실히 행했기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온전히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넷째,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 혹 범죄한 것이 있다면 이에서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그런데 자신을 돌아보아도 회개할 것이 없다면 감사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면 됩니다. 반드시 그 연단을 통해 축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 정도를 좇아 성실하게 살았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종으로 팔려가고 다시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당한다면 대부분 기쁨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평불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죄수의 신세였을 때에도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갔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요셉이 겪은 고난의 시간이 그 꿈을 가장 단기간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만인 앞에 존귀한 자가 되리라는 요셉의 꿈은 믿음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다스릴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먼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가서는 큰 장관의 가정사를 총괄하는 가운데 경제와 인사(人事)에 대한 실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애굽 전체의 재정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
또한 왕의 감옥에서는 함께 갇힌 사람들을 통해 총리로서 필요한 정치적 자질을 닦을 수 있었지요. 머리가 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 심지어 악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알아서 다스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낮은 자리를 거치면서 요셉은 더욱 겸비하고 덕과 사랑이 있는 큰마음이 되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게 되었고, 연단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교통하면서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연단을 거쳐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온 가족의 생명까지 구합니다.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을 피하게 하였지요.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꿈을 믿음으로 온전히 이뤄 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민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 역시 굳게 믿었습니다. 곧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지요. 그래서 “그때가 오면 내 해골을 메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임종 시에 유언하였던 것입니다(창 50:25, 히 11:22). 이를 통해 그가 평생에 얼마나 믿음으로 소망하며 꿈을 이뤄 가는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
우리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셉처럼 꿈이 있어야 하며 기도와 더불어 반드시 응답받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질서의 하나님이므로 순리를 좇아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대기업의 회장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합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즉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관련된 분야의 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문 지식을 익히고 능력을 계발하게 하며 사람의 마음과 세상 이치를 깨닫게 하시지요.
또한 많은 경험과 지혜를 쌓게 하면서 대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때로는 어려운 고비를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자리에서 별 진보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믿음으로 견뎌내는 사람은 마침내 크고 아름다운 그릇이 됩니다. 합당한 그릇 만드는 과정이 답답하고 곤고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응답을 받고 열매 맺는 과정인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고 고난이 와도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손에 응답이 쥐어지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여 질병을 치료받으려는 사람 중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나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로 빛나는 얼굴입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치료하시기도 하고 혹은 하룻밤 자는 사이에 온전케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더 크게 내보여야 하는 경우라도 우선 병세를 크게 호전시켜 주거나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때가 이르면 반드시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니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요셉의 믿음을 생각하며 모든 곳에서 성실히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은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
③ ( )은 세상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④ 고난 중에도 ( )하는 것이 참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99~111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히브리 노예에 불과한 요셉은 왕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시간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허송세월한 것이 되고 만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점이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2년이 지난 후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그 시간을 감옥에서 더 지내도록 두신 것이다.
2020-03-27
제13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1)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18 l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2020-03-20
제12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2)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요한일서 2:12~14 l 참고 말씀 / 마태복음 23:23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2020-03-13
제11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 1 )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7:24~27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2020-03-06
제10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2)
마가복음 9:14~29
읽을말씀 : 마가복음 9:14~29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1:24 l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2020-02-28
제9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1)
마가복음 9:23~27
읽을말씀 : 마가복음 9:23~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요한일서 5:3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