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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롭게 하소서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눅5:38 등록일자 2007.07.22
오늘은 찬양하는 일꾼들이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1982년, 교회 창립 이래 25년간 본 교회는 세계를 이룸에 있어 찬양 사역의 중요성을 예견하고 이 분야의 조직을 활성화시키며 일꾼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초창기부터 각종 찬양팀과 무용팀, 찬양전문 오케스트라를 지원해서 성장시켰고, 기독 문화의 발전을 선도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은 뛰어난 기교와 달란트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마음에서 나오는 중심의 향입니다. 그러므로 성결의 복음을 듣고 마음을 할례해 나가는 여러분이야말로 이 땅의 찬양하는 어떤 사람들보다 아름다운 중심의 향으로 최고의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자부심과 비전이 있었습니다.

금번에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일꾼들이 거룩하고 향기로운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사명자들로 나오길 원하시며, 예능위원회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조직과 체계를 개편하심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를 만드셨습니다.

조직을 새롭게 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천군천사가 화답하는 능력의 찬양을 간절히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첫사랑의 은혜로 열심히 달려가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기도를 쉬거나, 마음의 할례를 멈추면 어느 순간 은혜가 식어져 금세 세상을 바라보고 범죄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예능위원회 안에서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아 범죄하는 일이 없도록 지엄한 경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만큼 진리를 듣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많은 은혜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다시금 육을 취함으로 범죄함이 드러날 때는 더 이상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거듭 용서만 하는 것이 공의에도 맞지 않고 본 교회가 마지막 때 세계선교를 이룸에 있어 더 이상 누룩과 같은 죄악을 담아두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찬양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찬양을 담당했던 천사장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특별히 인성을 주어 서로 사랑을 나누셨던 것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찬양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편 69:31에 “이것이(찬양드리는 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말씀하셨지요.

사람이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드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에 그리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양이나 염소를 예물로 드렸고, 그것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둘기나 곡물가루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제물 중 가장 귀한 황소의 제사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중심에서 드리는 참된 찬양을 더욱 기뻐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을 받고 기뻐하실 때에는 그만큼 은혜와 능력을 입혀 주시고 그 이상으로 영육간의 큰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여호사밧 왕이 도무지 승산이 없는 전쟁을 할 때도 성가대의 찬양을 앞세워 믿음으로 전진할 때 칼과 창으로 싸우지 않고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찬미를 드리자 단단히 매인 착고가 풀리고 감옥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합당한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과 성결의 은혜를 부어 주시며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받는 축복보다 천국에서 받는 축복은 훨씬 큰 것입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지극히 사랑하는 연인에게 화려한 비단옷을 입히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각종 보석을 달아 주며 곁에서 늘 사랑을 나누길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찬양으로 영광돌린 성도들에게 가장 영화로운 상급으로 입혀 주길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쁨과 영원한 축복과는 결코 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푯대삼아 천국만 바라보고 달려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오직 순종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드리기까지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내셨습니다(고후 1:19). 온전한 순종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사사로운 마음을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내가 하고 싶고, 나의 유익이 되며, 나의 보기에 옳고 지혜로운 것들을 다 무로 돌리고 하나님의 뜻을 가장 우선적으로 여겨야 하지요. 이렇게 옛사람을 부인하고 날마다 죽어질 때 순종할 수 없는 것에도 온전히 순종하며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예능위원회를 변화와 개혁으로 인도하셨는데, 사람에 따라 자기 생각이나 자기 유익에 맞지 않을 때, 혹은 기존에 익숙해 있던 방식과 달라져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자기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굽한 2세대들은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이전에 익숙해진 생활 방식 등 모든 것들을 벗어 버리고, 긴박한 전시 체제로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과도기와 같은 시점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절제하고,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사람도 불평하지 않았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생명을 다해 순종하겠다고 한 목소리로 다짐하였습니다(수 1:16-18). 여러분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 되는 마음과 각오 속에 오직 순종함으로 예와 아멘하여 온 영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2:30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말씀하셨듯이 거역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모아줄 수 있어야 진정한 순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마음에는 불편함이 있지만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순종하라 하시니 잠잠히 뒤로 물러서 버리는 경우가 있지요. 이렇게 흐름 속에서 뒤로 물러서 버리면 참으로 “순종했다”고 할 수가 없고, 영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변화의 흐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그 변화 속에서 바로 여러분 각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적극적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고자 노력할 때,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발견한 것마다 변화되어 날마다 새로워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구별된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행하기 위해 새 마음, 새 각오로 시작한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워질 수 있는 은총을 더해 주십니다. 처음 사명을 맡았을 때는 얼마나 정성스러운 금식과 기도로 준비하여 마음의 향을 올려드렸습니까?

그런데 익숙해지니 습관적으로 단에 선다거나, 육적으로 기교와 더 고운 외모로 사람 앞에 칭찬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이처럼 부지중에 변질된 분야가 없는지 항상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매번 전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하며 성결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 큰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되 사람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한 향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와 기도생활, 성결에 대한 사모함도 날마다 더해져야 합니다. 어찌하든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힘쓰며 반드시 변화될 각오로 예배를 드린다면 모든 말씀이 정녕 꿀과 송이꿀처럼 달게 느껴지지요.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기를 사모하며 중심으로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나 주시고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며 변화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럴 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로 늘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변화되어야 성령의 충만함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할례를 멈추면 어느 순간에 충만함이 떨어지고 예전에 충만할 때 고백했던 말들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 되어버립니다. 마음의 정과 욕심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자신의 고백을 변개해 버리기도 하고, 그로 인해 범죄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자신이 고백한 대로 주님만 바라보며 가는 것 같고 충만한 것처럼 보인다 해도, 여전히 그 마음에 정욕을 버리지 못한다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웃는 얼굴로 단에 선다 해도 마음의 악을 버려나가는 노력이 없다면 그런 찬양에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향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정녕히 낮아진 마음,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매순간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선다면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이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에서는 끊이지 않는 찬양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진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립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경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녀들이 중심으로 경배하는 찬송을 듣기 원하십니다.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 눈빛과 표정, 목소리와, 온몸으로 드리는 사랑과 감사의 향을 받기 원하시지요. 장차 여러분은 아버지의 보좌 앞에 섰을 때 어떤 모습으로 찬양을 드리게 될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생명수 강가 정금길과 반짝이는 보석길, 향기로운 꽃길 등 천국의 이곳저곳을 주님의 손을 잡고 거닐면서 어떻게 사랑의 찬송을 드릴 것인지, 또 천사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연주할 때는 어떤 감사와 기쁨의 향으로 드릴 것인지를 그려보며 소망이 더해지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사모함 속에 새롭게 변화되어 가장 정결한 심령과 진한 향으로 드려짐으로 새예루살렘 아버지 보좌 앞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찬양으로 영광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7-23 오후 11:31:39 Posted
2018-09-04 오전 11:42:0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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