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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능력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살전5:23-24 등록일자 2008.07.06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유대인의 전통적인 절기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하며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월 첫 주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추감사주일에 하나님께서는 ‘능력’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반드시 위로부터 능력이 임합니다. 죄를 싸워 이기는 능력이 임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능력이 임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성전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많은 분야를 정비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며 더욱 성결에 이르도록 이끄셨고, 교회 조직도 개편하셨습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 가나안 땅에는 오래전부터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다 해도 쉽게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1.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가 이르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행했습니다. 그러자 범람하던 요단강도 흐름이 멈추어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넜고, 견고한 여리고성도 쉽게 함락시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역대하 20:20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능력을 주시고, 친히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늘 형통케 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온전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크게 임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들어서 알기에 나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즉 산 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뜻합니다. 어떤 성도님들은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며 자신도 큰 믿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자신에게 어떤 시험과 연단이 왔을 때라도 오직 믿음으로 행군해야 합니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아버지를 믿습니다. 주님을 믿습니다. 목자를 신뢰합니다.” 고백했다면, 이제는 그 고백에 담긴 진실한 믿음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깨우쳐 봐야 합니다.

모세가 없는 사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만들어 경배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던져 깨트렸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함께했던 여호수아는 이 광경을 보고 ‘저렇게 귀한 것을 왜 깨시나?’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정죄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모세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 밖의 어떤 일에도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이루고 있음을 온전히 믿고 따랐을 뿐입니다.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수기 14:24에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믿음이 얼마나 임해 있으신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꾼은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나게 행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 영적인 믿음 가운데 이뤄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면, 소망 가운데 사랑을 가지고 그 말씀을 보장하기 위한 행함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보시고 능력을 베풀어 안 될 것도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과는 상반되게 행하면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이렇게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사랑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2.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능력 있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의 수준에 올라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정말 악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악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인지도 살펴야 합니다. 겉보기에 흠이 없다 해서 성결된 것이 아닙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성결됐다’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질서를 좇아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머리로 세워졌으므로, 갈렙은 자신도 머리가 되고자 하지 않고 잠잠히 자신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어려운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여호수아의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와 갈렙의 마음에 비교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상대에게 얼마나 베풀어 주었고 얼마나 섬겨 주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김 받지 못해도 항상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나는 한 개를 줬는데 상대가 두 개를 주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섬기는 사람은 내가 서너 개를 줬는데 상대가 하나만 주더라도 감사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섬김의 마음이며, 성결을 이룬 사람의 마음입니다.

만일 내가 머리 되었다 해서 마음이 높아지고 화평을 깬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의 수준에는 부족합니다. 자신이 목자의 이름을 대신한다 해서 상대에게 불편을 주거나, 자신의 의가 앞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말은 무시한다면, 이 역시 아직 성결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라 해도 임의로 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고, 목자라면 어떤 덕과 사랑을 베풀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목자가 어떻게 섬겼는지를 생각한다면, 자기 의만 앞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화평 가운데 이루는 것이지, 누르거나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은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득 채운 마음을 상대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의롭고 진실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빛과 어둠, 영과 육이 그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성결’에 대해 바르게 정립해야 할 분야가 있습니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것만이 성결은 아니며, 빛과 어둠을 구분하여 나누는 것만이 성결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 줄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성결을 이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결을 이룬 사람의 마음에는 반드시 사랑과 덕이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과 덕이 있는지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수군거리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의 부족함을 덮어 주었는가? 아니면 드러내어 그 영혼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였는가? 이 모든 것에 하나라도 걸린다면 더욱 성결되어야 합니다.

3. 순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자기 의가 있는 사람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의중을 비추었을 때, 어떤 일꾼들이 “이렇게 하면 더 좋으니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면 저는 순종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양 떼가 목자에게 순종하는 것과 목자가 양 떼에게 순종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옳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양 떼가 목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조직과 체계를 영의 질서에 따라 재정립할 때, 체제를 정립한다는 명분 아래 자기 의를 펼치면서 여러 사람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도 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주님의 마음인데, 이는 주님의 마음과 너무 동떨어진 것이며 결과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며 하나님의 뜻을 꺾으면 안 될 것입니다. 목자가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비치면, 일꾼들은 반드시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목자님은 잘 모르셔서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한다면, 결과적으로 불순종의 죄를 낳게 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부흥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자동 부흥의 때가 오고, 이 제단에 힘이 될 많은 인물들이 공의의 법에 맞춰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순종이 이뤄져야 부흥이 됩니다. 주의 종들도, 일꾼들도, 성도들도 자율적으로 전도하고 심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정해진 체제 안에서 질서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한다면 마음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입술로 내지는 않는다 해도 그것이 마음에 쌓이게 되면, 온전한 화평을 이룰 수 없으므로 부흥의 열매도 그만큼 덜 맺힙니다. 그러므로 머리된 일꾼들은 기도하여 선한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일꾼이 기쁘고 즐겁게 일하여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수아와 갈렙을 주셨던 것처럼 이 제단에도 능력자들을 길러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쓰시는 능력자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과 성결과 순종을 이뤄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 성결, 순종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 성결, 순종을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능력자로 나와 마지막 섭리를 함께 이룰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7-07 오후 7:06:15 Posted
2018-07-09 오후 10:39:1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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