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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 4:24 등록일자 2017.07.0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그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지난 전반기 동안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지난 반년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하며 사셨는지요? 다윗은 시 40:5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신 무수한 기적, 곧 기사와 표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 곧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많고 크십니까! 이를 알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과 적게 하는 사람 중 더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바로 진리로 변화되어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수록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의 선하신 뜻과 사랑이 깨달아지고 범사에 감사가 더욱 넘치지요.

이 시간 다윗의 일생을 예로 들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말씀이 생명이 되어서 여러분 모두가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은 첫째,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아버지의 선과 사랑을 느껴 보셨을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늘 표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늘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 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블레셋의 침입으로부터 그일라 거민들을 구해 주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살기등등하게 다윗을 좇는 사울에게 밀고를 했지요. 이처럼 다윗은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이런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이 많이 암송하시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종일 종야에 찬송하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온 나라를 주셨지요. 하나님과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 왕이요,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그러기까지 연단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연단은 결국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시는 축복의 과정이지요.
그러므로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과연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하지요.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듯이,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 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 같이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죄악을 속히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이를 믿고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범사에 넘치는 감사를 올리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은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사 55:9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지요. 고전 1:25 전반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이룸에 있어서 육이라는 한계를 가진 사람은 보통 A라는 한 가지 길밖에 보지 못합니다. 그런 반면 영이신 하나님은 A보다 더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또한 때때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하지요.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이렇게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즉 자신은 번듯한 궁전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성전 건물이 없어서 오늘날로 말하면 임시 텐트 같은 곳에 있는 상황을 심히 안타까워했지요.

얼마나 사랑스러운 마음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성전은 다윗이 죽은 후에 그 아들로 하여금 건축하게 할 것이라고 그 뜻을 전하시지요. 그 영적인 이유는 바로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또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아셨지요.

이에 다윗은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 ‘나에게도 충분한 부와 권세가 있는데, 왜 나의 때에 건축하지 못하게 하시나?’ 하고 서운해 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다윗이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린 마음의 고백을 성령의 감동 가운데 알려 주셨습니다.

저의 저서 '눈물' 책자에도 수록되어 있지요. 그중 일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기에 나의 원하는 바를 주장치 않나이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내 마음을 담은 성전을 올리고자 함을 아버지께서 받으셨기에 그것으로 족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얼마인데 아버지의 마음을, 그 안에 담긴 뜻을 모르리이까. 아버지는 내게 항상 신실하셨고 나를 사랑하사 내 길을 여신 나의 아버지이니이다. 아멘."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 미리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마련했지요.

이처럼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쭙곤 하였습니다. 또한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의 이런 겸비한 마음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서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지요. 시 25:5에 이러한 다윗의 심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라고 하였지요. 즉 다윗은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뜻을 여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는 그래도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또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까지 높아져서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요.

성도 여러분, 지금의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책임자로서 항상 제 뜻이 아닌 주님의 뜻만을 따랐고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1만1천여 지․협력 교회가 속해 있는 세계적인 교단의 머리가 되었으니 달라졌을까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물론 이제는 ‘네가 주체가 되어 마지막 때의 섭리를 이루라‘고 하셨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정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지요.

그러나 이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에 따르는 것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만 가는 것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물론 육의 속성이나 자아가 죽어지지 않으면, 그래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면 이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된 이들에게는 주님의 뜻,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지요.

지금 제가 처한 모든 상황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세계 교구화를 이루는 일과 가나안성전, 대성전 건축이 지금 당장에 일사천리로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보시는 바와 같이 눈도 흐리고,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기억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불평을 하겠는지요? 아니면 성급하게 제 뜻을 관철시키려 하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구할 뿐이지요.

우리 주의 종님들과 일꾼들, 성도님들 모두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또 모든 삶 속에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어떻게 구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또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또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심으로써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셔야 하지요. 이로써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은 셋째,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크심을 진정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다윗이 그러했지요. 왕상 15:5을 보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하셨지요.

물론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 또한 철저히 회개했고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본 분들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또한 목자의 가르침에 순종했을 때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응답과 축복, 그리고 형통함이었지요. 사 1:19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 하신 약속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후반기에도 여러분이 순종하심으로써 아름다운 소산을 거둘 일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가깝게는 기관장 교육과 수련회가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목자가 쌓은 99%의 공의를 믿고 또한 응답 주시리라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여기에 참된 회개와 기도 또는 금식으로 정성껏 준비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 치료해주시겠다고 특별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즐겨 순종하심으로써 응답을 받아, 넘치는 감사를 올려드리십시오. 또한 범사에 늘 감사가 끊이지 않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다윗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신 분,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로우신 분, 위대하신 분이셨습니다. 또한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지요. 그 과정 중에도 항상 다윗을 향한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이제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7-07-03 오후 1:37:53 Posted
2017-07-12 오전 9:59:4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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