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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5)
설교자 이수진 목사 설교본문 롬 8:12-13 등록일자 2019.12.01
오늘은 본성 속의 악을 버리고 깨끗해진 마음 그릇에 하나님의 속성인 선과 사랑을 채움으로 큰 마음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라 생각하지만 성경은 마음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명백한 진리의 마음과 본성을 포함한 양심과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이지요(롬 7:22~23). 명백한 비진리는 진리와 완전히 반대이므로 쉽게 발견하여 버릴 수 있지만, 양심과 본성에는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의와 틀’이 있기에 악의 모양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이루려면 명백한 비진리는 물론 양심과 본성 속의 악까지 온전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1.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본성이란 ‘각 사람이 갖고 있는 마음의 근본된 성질’을 말합니다. 이는 부모로부터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기’뿐만 아니라,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양심은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양심의 악을 발견하여 버렸다 해도 자신의 마음의 가장 근본이 되는 본성에 내재된 악을 버리지 못하면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 없습니다. 본성 속의 악은 양심의 악보다 더 깊습니다.
본성은 땅의 성질 곧 토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잡초와 돌멩이를 제거하고 질서정연하게 작물을 심어 놓은 밭은 그냥 봐서는 토질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비진리를 많이 걷어내고 양심의 악을 뽑아내면 이런 모습이 되지요. 즉 악의 모양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웬만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그러나 성결의 복음은 본성 속의 악까지 발견하게 해 줍니다. 주변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면 근본에 남아 있던 찌끼가 올라오지요. 그러므로 연단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선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이는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욥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연단받기 전 본성 속의 깊은 악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고난에 처하자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며 친구들의 권면도 무시하고 눌러 버리지요. 즉 욥의 본성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이 드러난 것입니다. 욥이 연단을 통해 근본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철저히 변화되니 하늘에서도 큰 자가 되고 이 땅에서도 갑절의 복을 받을 수 있었지요.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인정받을 정도로 아름다운 마음과 중심을 가졌고 하나님과 백성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이런 다윗도 본성 속의 악이 드러나지요. 자신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그녀가 잉태하자 궤계를 써서 우리아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듭니다. 바로 다윗의 본성 속에 있던 간음이 발동하여 죄를 짓게 되었고, 궁지에 몰리자 살인이라는 악까지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큰 죄를 지은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왜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시며 그를 사용하셨을까요? 이는 다윗이 연단받을 때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자 철저히 회개하였고, 그로 인해 오는 큰 어려움도 겸비한 모습으로 받아 근본의 악까지도 온전히 버렸습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경작의 열매입니다.
욥과 다윗은 연단을 통해 이전보다 더 선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본성 속의 악까지 버림으로 영육 간에 이전과 비할 수 없는 큰 복을 받았지요. 우리도 마음의 악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영을 이루려면 자신의 본성과 양심까지 빛의 말씀에 비추어 진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처럼 양심과 본성 속의 악까지 발견하여 버리면 진리의 마음 즉 영이 됩니다.


2. 마음을 지키려면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지켜 갈 때 하나님 마음을 닮게 되니 그것이 생명의 근원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생명은 자신의 구원의 의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이 되지요. 그 마음에 진리만 있으니 생각과 행함도 선과 사랑만 나옴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주변에 생명을 낳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에 비진리와 악이 있을 때는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어도 내 유익에 맞지 않고 화 나는 상황이 되면 이내 혈기와 짜증을 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고자 마음먹어도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하자.’ 하지요.
성경에도 비진리로 인해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화를 입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옵니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소유를 팔아 헌금하며 구제하였습니다. 이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유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 양 사도들 앞에 가져왔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하나님을 속이려 한 그들을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나 죽었지요. 이들은 성령이 충만할 때는 하나님께 다 드리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돈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욕심이 발동하여 작정하였던 것을 변개함은 물론 속이기까지 합니다.
사단은 비진리의 마음을 혼의 작용을 통해 움직입니다. 사단이 마음을 사로잡으니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며 자신의 마음을 주관하신 성령도 속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단의 주관을 받는 사람을 혼의 사람이라 하며, 그러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혼이 떠났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처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는다 해서 곧바로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어찌하든 변화되기를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시지요. 다만 이 사건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속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본보기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기다려 주셔서 곧바로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진리로 지키지 않고 죄와 악으로 쌓아가면 결국 생명을 잃는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마음속 비진리를 다 뽑아내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는 비진리로 단단히 굳어 버린 길가밭을 갈아엎어 부드럽게 하고, 뿌리를 깊이 박히지 못하게 하는 돌을 빼내며,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육신의 생각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가시떨기를 다 뽑아내어 옥토로 개간하라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려면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는 것은 버리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간음하지 말라” 하신 대로 행하여 순종할 때 마음에 비진리가 빠져 나가 옥토가 되지요.

둘째로, 아름다운 선으로 가득 채워 가야 합니다.
옥토 자체는 악을 버린 깨끗한 바탕일 뿐 아직 씨를 뿌려 열매를 낸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지키라”는 것은 지키고 “행하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씨를 심는 작업입니다. “계명을 지키라, 감사하라” 등의 말씀을 행하면 우리 마음 밭에 심어져 아름다운 영의 열매로 자라납니다.

셋째로, 행함으로 온전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속의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지키라, 행하라” 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되, 그 행함이 온전해질 때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려면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따라 행할 때에 마음을 온전히 진리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면 마음을 지킬 수 없고 다시 마음 밭이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소욕에 따라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을 빼내고, 본성과 양심 자체도 모두 진리로만 채우면, 마음이 바로 영 자체가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진리로만 지킬 때 생명의 근원인 영이 살아나고 그 안에서 생명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면,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닮은 신의 성품의 참예하는 더 깊은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의 크기를 넓혀야 하지요. 깨끗해진 마음 그릇 안에 하나님의 속성인 선과 사랑을 채워 넓고 큰 그릇을 만들어 더욱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크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크기는 우주보다 더 넓습니다. 천지 만물을 설계하고 창조하신 분이기에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마음 안에 다 담겨 있지요. 그러니 그 사랑과 능력도 무한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죽은 영이 살아나 마음 안에 영의 지식을 채워 가는 만큼 커지는 것이므로 크기가 유한합니다. 흔히 “마음이 태평양같이 넓다. 마음이 밴댕이 속같이 좁다” 하는데 이렇게 사람의 마음 크기가 다르고 한정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혼과 비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세포에 지식으로 담아 놓은 내용물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마음이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혼에 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각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요. 비진리와 악이 있는 만큼 마음 그릇이 작습니다. 그러니 마음 그릇이 좁은 사람은 가족 간에도 서로의 마음 하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각을 기준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비진리는 자기 위주의 생각과 마음이기에 크고 넓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판단하고 의심하며 믿음을 잃게 합니다. 또한 사람을 작고 옹졸하게 만들지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악한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힘들게 하며 자신의 유익만 구하는 작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선한 마음, 온전한 영의 마음은 큰 마음입니다. 선과 영은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우리도 그 선과 사랑, 영을 이룬 만큼 마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은 하나님의 선과 사랑이 가득한 영의 큰 마음을 이루어 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9-12-02 오후 10:35:19 Posted
2019-12-13 오후 10:56:2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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