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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광의 열매(5)
설교자 주현철 목사 설교본문 고전 15:41 등록일자 2019.09.22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한 새 예루살렘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열두 보석의 영적 의미를 종합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오늘은 아홉 번째, 열 번째 기초석에 대해 증거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과 성문, 기초석의 종류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적인 자격이 그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성곽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뜻이지요. 첫 번째 열쇠는 ‘영적인 믿음’을 의미하는 벽옥으로 된 성곽이며, 두 번째 열쇠는 성곽의 열두 기초석이라 했습니다. 열두 기초석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새 예루살렘 성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1. 아홉 번째 기초석, 양선을 의미하는 ‘담황옥’

담황옥은 토파즈라 불리는 붉은 오렌지색의 투명한 보석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영의 마음은 ‘양선(良善)’입니다. 양선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고 착함’이며 영적 의미는 이보다 훨씬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선(善)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반적인 의미로 세상에서는 ‘양심(良心)’이 있습니다. 양심이란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서 시대나 나라,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이는 양심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각자 부모로부터 타고난 본성을 바탕으로 하여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누구를 통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정직을 중요하게 가르침 받고 자란 아이는 작은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에 가책이 되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늘 거짓말하는 환경 속에 자란 아이는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고도 태연하지요. 같은 환경 속에 자란 형제라도 각각 어떻게 받아들여 가치관을 형성하느냐에 따라 양심이 달라지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항상 동일하지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기준 삼아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바로 영적 양선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5절 전반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라고 했습니다. 영적 양선이 임한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 나오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나옵니다. 이처럼 선을 추구하는 마음이 선한 말과 행실로 나타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주변에 덕과 사랑을 베푸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선입니다.
성경에는 담황옥의 빛깔, 곧 영적 양선의 빛이 유독 강하게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진리 안에서의 선이 무엇인지 깨닫고 선을 사모한다고 했지만, 선을 행하는 모습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빌립보서 2장 1~4절 “…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누가복음 10장 30~3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진리 안에서 양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밝히 알려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됩니다. 한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를 봤지만 그냥 피해서 가버렸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지만 진리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양선이 없으니 그냥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던 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 주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갔지요. 그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떠나면서 만약 돈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올 때 갚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만약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 그냥 지나쳤다면 그 일이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선을 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 범사에 선한 것을 택해 나가는 마음이 양선입니다.

둘째, 마태복음 12장 19절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양선에 관한 말씀입니다.
양선한 사람은 들레지 않으며 아무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상대의 티나 허물을 드러내어 말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어 높임 받으려 하지도 않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한다 해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또한 겉모습에서도 양선이 배어 나옵니다. 예수님의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은 흠이 없고 교양을 갖춘 참으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모든 몸가짐과 행실을 닮아가고 입술의 말도 달라져야 하겠습니다(잠 22:11).

셋째, 마태복음 12장 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이는 ‘양선’을 표현한 가장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여기서 ‘상한 갈대’란 영적으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도 주님을 영접할 만한 선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결코 외면치 않고 맞아 주시며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은 구원받을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상한 갈대와 같으며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믿음이 연약하여 시험 환난에 넘어져서 다시 일어설 영적인 힘이 없는 사람, 아직 버리지 못한 육으로 인해 교회와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고 부끄러워 다시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 먼저 되었으나 나중 된 사람들 중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도 잘 안 되니 때로는 속상하여 악을 발하는 사람 등입니다.
영적으로 양선한 사람은 이런 이들의 마음도 헤아리고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흑백을 가리거나 옳고 그름을 논하여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하여 악으로 나오는 사람이라도 그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양선입니다. 상대가 악하여 아무리 선대해도 사망의 길을 갈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고자 애쓰는 것이 바로 주님의 양선입니다.


2. 열 번째 기초석, 절제를 의미하는 ‘비취옥’

비취옥은 옥수의 일종으로 반투명하며 청록색 빛이 나는 보석입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영의 마음은 ‘절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풍성하면 좋겠지만 질서를 따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영을 사모하는 성도들이라면 절제의 열매는 매우 중요합니다. 죄를 버리고 진리 안에 행하고자 할 때도 기본적으로 절제가 필요하지요. 이처럼 절제는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고 절제하는 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요. 마음에 임한 열매들이 질서와 조화 속에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중재기관과 같습니다.
디도서 1장 7~8절에는 감독된 자의 자격이 나오는데, ‘절제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진리로 분별하고 매사에 절제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행하면,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할 수 있으므로 시험을 자초하지 않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서 곧장 바른길을 가므로 형통한 삶을 누릴 수 있지요.
그러나 절제하지 못한 사람들은 일이 틀어지고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도 마음에 온다고 해서 무조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진리로 분별해 봐야 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부족한 사람은 성급히 일을 추진하다가 일을 망치거나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정확한 때를 맞출 줄 압니다. 이처럼 영으로 들어간 사람도 절제는 꼭 필요한 열매입니다. 하물며 아직 육을 다 버리지 못한 사람은 더욱 절제의 열매가 필요하지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뚜렷한 인생의 목적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삼가 절제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절제된 삶을 살아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인물로는 세례 요한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땅에 온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았고, 순교하기까지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갔습니다(요 3:28~30).
세례 요한은 참 빛이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알고,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 살았지요. 홀로 광야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했으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는 등 매우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순교함으로 그 생을 마감하기까지 세례 요한은 오직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숭고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말씀하셨지요(마 11: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천국 새 예루살렘에서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자요, 가장 빛나는 영광의 열매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택하여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 제단과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고 이루고자 하시는 뜻과 섭리가 있습니다.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통해 무수한 영혼들을 구원하고 인간 경작의 마무리를 승리로 멋지게 장식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영광의 열매로 들이셔서 영원토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열두 기초석에 담긴 아름다운 마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간절한 기대에 보답하는 만민의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드립니다.

2019-09-22 오후 4:06:09 Posted
2019-11-01 오후 1:20: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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