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정기 예배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나의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믿음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막 2:3-12 등록일자 2016.05.22
성경 말씀은 살아 있어 믿는 자들에게 성경의 기적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혹여 “나는 분명히 믿는데 왜 응답이 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응답받는 영적 조건을 깨달아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한 중풍병자가 네 친구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이든 다 고쳐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믿었습니다. 자기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지요.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서 계신 집 안으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는데 그 집의 지붕을 뜯어내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붕은 갈대와 진흙을 섞어 만들었기에 가능했지요. ‘남의 집인데 훼손해도 될까? 흙먼지가 날릴 텐데 어떡하지?’ 이처럼 지붕을 뜯어내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지만 바로 지금 예수님께 나가야만 응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모든 이유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아직은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언제 응답이 임했나요? 5절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고, 11절에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셨을 때 중풍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1. 사람 편에서 믿음을 내보임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 놓아야 합니다

‘사람 편에서의 믿음’이란 일반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성경 66권이 하나님 말씀인 것과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음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것과 그 후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이는 사람 편에서 갖는 일반적인 믿음으로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그런데 일반적인 믿음 자체가 응답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을 수 있는 받침대의 역할을 할 뿐이지요. 중풍병자나 네 친구도 일반적인 믿음은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고 믿음이 참임을 행함으로 내보였지요. 곧 지붕을 뜯어내면서까지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바로 자신들 편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든든히 세워 놓았습니다. 본문 5절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하신 것처럼 자신들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보실 수 있도록 행함으로 확실히 내보였지요.
오늘날도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려면 이처럼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서 하나님께서 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환자의 주변 사람이 환자를 억지로 데려와서 기도받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응답받기 어렵습니다. 응답받기 위한 최소한의 믿음의 받침대는 환자 본인이 준비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를 알고 믿음으로 나와야 하지요. 치료의 응답을 받으려면 최소한 ‘십자가의 도’ 말씀과 같은 기초적인 말씀을 들어서 지식적인 믿음이라도 갖고 그 믿음을 발판삼아 스스로 나아올 때 치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도 사고를 당하거나 중한 질병에 걸렸다면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계명입니다. 이 두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없었다면 믿음으로 응답받기는 어렵습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만일 소원을 응답받으려면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임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든든히 세워 놓아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와 금식, 철야기도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각자 믿음의 분량대로 전도, 봉사, 섬김, 구제 등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선행을 해야 하지요. 이처럼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일 때, 바로 사람 편에서 믿음의 받침대를 놓을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임할 수 있습니다.

2.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칙을 잘 아시기에 응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음의 받침대를 준비해도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으면 안 됩니다(사 59:1~2). 또한 믿음의 받침대를 세우려 해도 죄의 담이 있으면 받침대가 흔들립니다.
사단은 죄의 담이 있는 사람에게 의심의 생각, 육신의 생각이 떠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응답에 대한 의심이 생기게 되며 지식적인 믿음마저 잃게 됩니다. 예전에 들었던 간증이나 자신의 체험까지 우연의 일치로 여기게 되지요. 죄의 담이 있으면 사단이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 일으켜서 믿음의 받침대가 세워지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응답받기 어려워지지요.
그러므로 믿음으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혹여 ‘나는 죄를 지었으니까 하나님께서 응답 안 해 주시겠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지요? 영, 온 영의 마음을 이루기 전까지는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면 됩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고,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요일 1:7, 9).
이 말씀을 의지하여 죄의 담이 있다면 먼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자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에서 돌이켜 빛 가운데 행하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죄의 담이 없는 상태에서 믿음의 받침대를 잘 세웠다면 사람 편에서 응답받을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사람 편에서 아무리 잘 준비해도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 11절에 예수님께서는 들것에 누운 채 지붕에서 내려진 중풍병자를 바라보신 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중풍병자나 네 친구의 믿음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의 믿음의 고백이지요. 중풍병자와 네 친구가 마련한 믿음의 받침대 위에 예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얹어 주시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랜 세월 중풍을 앓던 사람이 순간에 자기 발로 일어나 침상을 들고 유유히 걸어갔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위로부터 임하면 일시에 변화가 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이 사라집니다. 마음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확신이 생기지요. 바로 이러한 믿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간혹, 이런 영적인 원리를 알지 못하여 믿음이 아닌 만용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 어느 날 삼각산에서 신유 집회가 있었는데 집회 도중 폭우가 내렸습니다. 계곡에는 물이 불어났고, 급류가 흘렀습니다. 집회에 참석했던 두 사람이 먼저 귀가하려는데 급류로 길이 막히자 “주님, 베드로도 물 위를 걸었는데 우리라고 못 걸을 이유가 있겠습니까? 주여 믿습니다.”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계곡을 건너려고 들어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영의 지식이 없으므로 생긴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그들은 참 믿음을 내보인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실 때까지 기다렸어야 하는데 자기들이 생각하는 믿음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은 자기 믿음으로 된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에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고백했습니다(마 14:28). 믿음의 받침대를 놓은 것이지요. 그렇다고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이 베드로에게 바로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비로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을 때,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고, 물에 빠져 갔습니다. 베드로가 놓았던 믿음의 받침대가 흔들리다가 쓰러져 버리자 물 위를 걷는 역사도 끝나고 말았지요. 이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사업을 할 때든, 치료받기 위해서든, 주 안에서 무슨 계획을 이룰 때든 마찬가지입니다. 내 편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세우되 나의 믿음 위에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얹어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기도했으니까, 금식도 했으니까.’ 하면서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 내 계획대로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오면 ‘내가 믿고 기도도 하고 금식도 했는데 왜 안 되지?’ 해서는 안 되지요.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으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올 때까지 기다림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오래 참음도 있고, 절제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때가 응답의 때입니다. 마치 마른 땅이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마음이 충만할 때 어떤 문제도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담이 없는 사람은 두 번째 단계가 생략되어 응답이 빠릅니다. 사람 편에서 믿음의 받침대를 마련하면 그 받침대 위에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얹어 주셔서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하나님의 역사가 번개 치듯 일어나지요. 그런데 영혼이 잘되어 영, 온 영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죄의 담이 없음은 물론이요, 믿음의 받침대도 잘 준비돼 있지요. 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충성하니 구하는 것마다 바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작정기도나 금식기도를 해야만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한 번만 기도해도, 마음에 품기만 해도 응답이 오지요.
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큰 응답은 믿음의 받침대를 혼자만 잘 세워서는 안 됩니다. 부서의 문제는 부서원 전체가, 교구는 교구 식구 전체가, 교회적인 기도제목은 교회 전체가 함께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야 하지요. 이러한 영적 법칙을 잘 터득하여 소원하는 기도 제목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님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6-05-24 오전 2:15:43 Posted
2016-05-25 오후 9:49:13 Updated

이전글 믿음의 분량
다음글 막달라 마리아(3)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