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배

설교 > 정기 예배

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다음요즘 메일보내기 바로가기복사
제목 심고 거두는 법칙(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갈 6:7-9 등록일자 2010.03.28
[심고 거두는 법칙] 네 번째 시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다만 물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은 물론, 시간과 노력과 우리의 모든 삶을 드릴 때 그 열매로 주시는 모든 축복을 포함하지요.

예를 들어, 모세는,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로 평안한 일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드렸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마치 신과 같이 여겨질 정도로 크고 놀라운 권능으로 보장하셨습니다.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주셨지요. 이런 경우도, 심고 거두는 법칙에 비춰 보면 모세는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심고 큰 권능과 영광을 거둔 것입니다.
또 솔로몬은 일천 번의 정성스러운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구하여 전무후무한 지혜를 거두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므로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 더해 주셨지요.
백부장 고넬료는 많은 구제와 선행을 심어 자신이 구원받는 축복과 가정 복음화의 축복까지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심고 거두는 법칙은 범사에 적용됩니다. 충성을 심어 건강의 축복을 거두기도 하고 예배와 기도를 심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거두며 물질을 심어 물질의 축복도 거두지요.
이렇게 영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영의 열매로 거두는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열심히 영으로 심고 있습니다. 세상 썩어질 것을 위해 심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심어서 영육 간에 축복을 거두고 있지요. 그리고 장차, 최후에 거두게 될 열매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영광이구요.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심습니까? 신령한 세계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육으로 심어서 육을 거둘 뿐입니다. 정욕과 쾌락, 부와 명예, 권세 이렇게 세상에서 좋게 여기는 것들을 위해 열심히 심고 또 심지요. 그러나 그 열매는 헛된 것이요 사망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심어도 그래서 잠시 동안은 보기에 좋은 것들을 거둔다 해도 그것들은 결국 다 썩어지고 없어지지요.
우리 성도님들은 썩지 않는 영원한 것을 알기에 영으로 심고 거두어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심고 거두는 법칙] 설교를 들으실 때도 여러분이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축복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어서 물질의 축복이 여러분을 따라오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의에 맞게, 성령의 역사 속에 믿음으로 심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지요. 오늘도 증거되는 말씀을 잘 양식 삼으셔서 한 해 동안 많은 축복의 간증이 여러분의 삶에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심은 대로 넘치게 거두는 방법, 네 번째까지 설명했습니다. 첫째, 마음밭을 개간해야 한다 했고 둘째,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한다 했습니다. 셋째는, 욕심으로 구하면 안 된다 했고 넷째, 정도를 걸어야 한다 했지요.

이어서 여러분이 심은 것마다 넘치는 축복으로 거두기 위해서는
다섯째, 많이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지요. 아무리 넓은 땅을 가진 농부라 해도 심은 만큼만 거둡니다.
예를 들어 어떤 농부가 기름진 옥토를 백 마지기 갖고 있으면 무조건 백 마지기의 수확을 얻을까요? 아니지요. 씨를 뿌린 만큼만 거둡니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한 마지기에만 씨를 뿌렸으면 한 마지기의 수확만 거둡니다. 오십 마지기에 뿌렸으면 오십 마지기의 수확을 거두지요.
물론 옥토에 뿌렸기 때문에 같은 면적의 척박한 땅보다는 수확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옥토라고 해도 한 마지기만큼 뿌렸는데 열 마지기의 수확을 거둘 수는 없지요. 영적으로도 여러분이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또, 많이 심을 때라야 그 축복을 뚜렷하게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 여러분이 만 원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두 배로 축복을 주신다고 합시다. 이때 직접 돈으로 주실 수도 있고 질병이나 재앙의 손실을 막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 원의 두 배, 곧 2만 원 정도의 액수라면 하나님께서 주셨다 해도 그 축복을 여러분이 실감하기는 어렵지요.
반면, 천만 원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서 두 배로 갚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액수가 크다 해서 많이 심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물을 통해 받고자 하시는 것은 물질 그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금도 하나님의 것이요 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물질을 왜 필요로 하시겠습니까? 물질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향이지요. "네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대로 예물 안에 담긴 여러분의 마음을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들레는 마음, 자랑하는 마음으로 심거나, 혹은 인색한 마음으로나 억지로 심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믿음과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심어야 하지요.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성전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지켜 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헌금을 할 때 자랑스럽게 연보궤에 돈을 넣으면서 얼마나 많이 넣는지를 과시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과부가 와서 두 렙 돈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는, 겨우 빵 하나 살 정도의 적은 액수이지요. 그런데 이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소유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이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적은 돈이지만 과부에게는 너무나 큰돈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당장 끼니를 굶어야 할 수도 있지요. 누가 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그 가진 소유를 다 드리는 과부의 마음이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 마음의 향이 담긴 예물이기에 다른 부유한 사람들의 예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했지요.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드렸다 하신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초신자 때부터도 어찌하든 하나님 앞에 더 드리고자 했습니다. 처음 참석한 부흥성회 때 십일조에 대해서도 배웠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빈손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이후로는 그대로 순종만 했지요.
십일조도 꼭 십분의 일만 한 것이 아니라 항상 넉넉하게 드려서, 십의 이조나, 삼조, 그 이상도 믿음으로 심었지요. 쓰고 남은 것에서 드린 것이 아니라 수입이 생기는 대로, 하나님께 드릴 것은 항상 먼저 떼어 놓았습니다.
십일조만 아니라 감사헌금이나 각종 헌금들을 미리 구별하여 깨끗한 새 지폐로 바꿔두지요. "이 정도면 내 형편에 너무 많이 드리나?" "좀 적게 드릴까?"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주관이 오는 대로 힘껏 드렸습니다. 이렇게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고, 어찌하면 더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가 심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다 드리고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어느새 더 많이 드릴 수 있도록 채워 주셨지요. 물질 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서 부족함이 없게 하셨구요.

지혜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항상 열심히 심되, 때를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각종 절기 때나 부흥성회같이 천국 잔치를 여실 때가 그런 경우입니다. 또 특별히 건축 작정을 하게 하시는 때도 주관을 잘 받아서 약속대로 드리면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 저는 이런 특별한 기회가 있으면 절대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송구영신예배도 그렇지요. 한 해 동안 축복 주실 하나님을 믿기에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믿음의 그릇을 준비합니다.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 예배는 항상 정기적으로 돌아오지요. 이런 절기 예물도 그때 가서, 있는 것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드립니다. 또 헌신 예배도,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을 헌신하여 드리는 예배이니 예물 또한 헌신의 의미를 담아 정성을 다해 드렸구요.

종종, 물질의 축복을 간구하는 분들을 대하면서 제가 안타까운 경우가 있습니다. 절기 때나, 아니면 특별히 심을 기회가 있을 때 그분들이 너무나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재정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저에게 나와서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 믿음을 내보이지 않지요. 물론 당장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이 드리지 못한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공의입니다. 당장 없기 때문에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도 더 정성을 다해 믿음을 내보여야 하지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액수를 많이 심어야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마음의 향으로 드려야 할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만 원 있는 사람이 드린 백만 원과 백만 원 있는 사람이 드린 오십만 원 중 어떤 쪽이 마음의 향이 더 진할지를 생각해 보면 되지요. 정성을 다해 믿음을 내보이는 분을 보면, 옆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에도 감동이 와서 힘이 되어 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감동시킬 만한 행함을 보인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축복을 사모한다 하면서도 정작 축복받을 그릇은 준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는 것이지요. 저는 항상 힘껏 드렸지만, "어차피 얼마 지나면 또 드려야 하니까 이번에는 좀 적게 드리자", 이런 식으로 계산하고 따져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나와 질병을 치료받은 후, 첫 부흥성회에 참석했을 때부터 마음에 주관이 오는 대로 심었지요. 이 부흥성회에서, 강사였던 목사님의 교회에 건축헌금을 작정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꼭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고 싶었지만 당장 가진 돈은 없으니 3개월로 작정했지요.
당시에 제가 살던 집의 전세금이 10만 원이었는데, 그때 작정한 액수가 30만 원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함께 참석했던 기도원장도 똑같은 액수를 주관 받았다고 했기에 성령의 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어서 더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주관이 올 때는 빚을 내어서라도 작정한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지요. 그 이후로도 액수가 적든지 많든지 마음에 오는 대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드렸습니다. 그때마다,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심었지요. 믿음으로 심었기 때문에, 심으면 심을수록 마치 은행에 예금 잔고가 넘치는 사람처럼 항상 든든하고 담대했습니다. 제가 필요할 때는 얼마든지 구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주실 줄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응답 받으면서 오늘까지 신앙생활해 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은 것마다 넘치는 축복으로 거두기 위해서
여섯째, 믿음과 행함에 변개함이 없어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씨를 심고 몇 달 지났는데 원하는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더 이상 가꾸지 않는다거나 땅을 갈아 엎어버린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동안 수고한 것이 허사가 되지요. 심었다면 거둘 때까지 부지런히 가꾸어야 하고 또 한 가지만 심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부지런히 심습니다.
예를 들어 벼농사를 짓는다 해도 논 주변에는 콩도 심고 텃밭에는 상추나 고추, 옥수수나 고구마도 심습니다. 집에서는 콩나물도 기르구요. 그러면 어떤 것은 일 년이 지나야 수확하지만, 어떤 것은 몇 달 만에도 수확을 합니다. 콩나물은 며칠이면 먹을 수 있지요. 일 년 걸릴 것은 일 년을 가꾸어야 합니다. 인삼 같은 것은 4년 이상도 돌봐야 하지요. 그러나 금방 거두는 것들은 그만큼 수익이 적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들은 그만큼 수익이 크지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분야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저것 기회가 될 때마다 부지런히 심되 심은 것은 반드시 축복으로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언제 주시는지는 하나님의 소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시지요. 오래 걸리는 것은 그만큼 열매가 더 크구요.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항상 저는 고백하기를, 하나님은 복리에 복리를 더해서 계산해 주신다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고백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어느 정도 심고 가꾸다가 원하는 대로 받지 못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범사에 상 받기를 바라는 믿음으로 행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상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식으로 주시지요.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까 언제까지 어떻게 축복해 주세요" 하고 계산적으로 하나님 앞에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을 아니 주신다 해도 사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드릴 마음이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영광돌리고자 하는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지요. 응답이 더딘 것 같다 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을 하게 되면 그로인해 오히려 응답이 멀어집니다.

비유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것에 응답받기 위해 믿음을 100만큼의 분량을 채워야 한다고 합시다. 열심히 믿음으로 구하고 행해서 50, 60 채워가다가 갑자기 20정도를 쏟아버렸다면 어찌 될까요? 그러면 또 다시 그 분량을 채워나가느라 더 많이 수고해야 하지요. 이렇게 채우다가 쏟아 버리고, 또 채우다가 쏟아 버리기를 반복하면 응답이 얼마나 더디겠습니까? 아예 믿음으로 구하고 행하기를 멈춰 버린다면 그 전에 행했던 것도 열매로 거둘 수가 없지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도 믿음으로 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으로 쌓아왔다면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느 순간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해도 축복을 안 주시나" 불평한다면, 이미 그 자체가 공의의 저울에 달아봤을 때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 한 번 드리기로 정한 것은 반드시 그대로 드려야 합니다. 드리고자 한 것을 자기 유익에 따라 바꾸거나 서원한 것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27장에 보면 생축을 하나님께 서원물로 드릴 때, 더 좋은 것으로도 바꾸지 말라고 했지요. 이것을 드리겠다 해놓고 변개하여 대신 저것으로 드리겠다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또 시편 15편 4절에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않아야 함을 말씀했지요. 전도서 5장 5~6절에는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했습니다.

여러분이 당장 가진 것이 없지만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작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도, 자기 생각 속에서 하지 말고 성령의 주관 속에서 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 해서도 안 되지만 자기의 욕심과 의욕이 앞서서도 안 되지요. 그런데 자기 생각 속에서 작정한 것이라 해도 한 번 정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만약 작정해 놓고 지키지 않은 것이 있다면 다른 축복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 작정부터 이행하여 담을 헐어야 하지요. 육신의 생각 가운데 작정한 것이었다면 작정을 지키기까지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지만 결국 약속을 지켜 드렸을 때는 틀림없이 심은 것 이상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여러분이 구하는 대로 무엇이나 주실 수 있습니다.
바로 제가 산 증인입니다. 질병과 가난과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 죽음만 기다리던 저였습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었고 연탄 한 장을 미리 사다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였지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대로 살았더니 영혼이 잘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건강도, 물질도, 명예도, 어떤 소원이든 마음에 품는 대로 이뤄 주셨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가 이런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여 진리 안에 거하시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심는 것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거두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3-29 오후 11:14:37 Posted
2018-02-21 오후 2:44:51 Updated

이전글 2003년 기도제목(4)
다음글 섬김
검색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