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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치료와 응답의 공의(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사 59:1-2 등록일자 2009.12.06
성도 여러분, 이처럼 질병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죄의 문제를 비롯하여 가족 간의 영적인 끈으로 인해 복잡하게 얽힌 경우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두세 가지 경우가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공의 가운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우들을 알아서 그 각각의 경우에 맞게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모두의 신앙이 공의에 맞아야 치료의 응답이 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같은 질병에 걸린 두 사람이 있을 때 둘 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받으러 나왔습니다. 이때 한 사람은 단번에 기도받고 치료받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두 번, 세 번 기도받아도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어느 한 사람만 편애하셔서도 아닙니다. 한 사람은 공의에 맞게 준비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공의에 맞는 준비가 안 된 것이지요. 가령 한 번의 기도로 치료받은 사람은 자신의 죄 문제로 인해 질병이 온 것이어서 자신의 죄만 회개하면 되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몇 번 기도받아도 치료받지 못한 사람은 질병이 온 원인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도 있지만 부모나 조상의 죄로 인한 부분도 있는 경우이지요. 그러니 이런 경우는 자신의 죄만 회개한다고 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공의가 충족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설령 전적으로 자신의 죄로 인해 질병이 온 경우라 해도 그 질병이 오기까지 쌓아온 죄의 경중에 따라 치료받기 위해 만족시켜야 할 공의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암에 걸렸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성령 훼방이나 모독과 같은 중한 죄로 인한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중한 죄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죄가 쌓이면서 조금씩조금씩 병이 진전된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똑같이 암을 치료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온다 해도 이 두 경우는 치료받기 위해 필요한 공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에 치료 하나만 놓고 볼 때도 간단하게 치료되지 않는 경우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죽은 신경, 죽은 세포라도 쉽게 살아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오랜 세월 기도하며 매달려도 근본 원인을 깨달아서 해결하기 전까지는 살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제가 여러 환자들을 대하다 보면 가장 안타까운 경우 중에 하나가 본인은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나 조상들과 연결된 영적인 끈으로 인해 결국 질병을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환자 본인만 놓고 본다면 그 정도의 질병은 얼마든지 믿음으로 치료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도 제가 기도해 주었을 때 치료되지 않고 점점 병세가 악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 그분을 놓고 기도해 보면, 조상이나 가족과의 영적인 끈으로 인해 병이 오게 된 것임을 알려 주시지요. 이런 경우 다행히 조상이나 가족과의 영적인 끈으로 인한 부분을 해결하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거나 조상이 쌓아놓은 죄의 담이 너무 중하여 좀처럼 헐기가 쉽지 않은 경우이지요. 이럴 때는 제가 아무리 마음에 품고 기도를 해 주려고 해도 제 마음에서 치료의 확신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 흘리게 되지요. 나라의 법이 바르게 선 나라는 설령 대통령의 아들이라도 잘못을 하면 벌을 받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용서해 주고 싶다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영계의 법은 더더욱 정확합니다. 저의 권능이 아무리 크고, 제가 마음에서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영계의 법에 따라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을 보시고 역사해 주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내보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간절한 사랑의 간구와 정성이 있어야 하지요. 사실 이런 경우는 부족한 공의의 분량을 엄청난 희생으로써 대신 채우는 것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치료받고 응답받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 혹여 질병을 치료받고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모두가 이처럼 다양한 원인들을 다 따져봐야 하나 참으로 복잡하다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질병이나 문제의 원인은 바로 본인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을 돌아보아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찾아 해결하면 치료와 응답을 받을 수가 있지요.
다만 지금 설명드린 경우들은 그처럼 본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기도를 받았다고 했는데도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 경우, 본인의 죄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조상의 죄 문제와도 연결된 경우가 있거나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경우에 대해서 오늘 간단하게 정리를 해드린 것입니다. 근본적인 죄의 문제에 대한 것도 금년 초에 여러 시간에 걸쳐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어 놓고도 자기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이런 말씀들에 대해 2004년도에 설교했던 하나님의 공의 설교와 2009년도에 설교했던 응답과 축복의 하나님 설교를 다시 한 번 참조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축복의 해 2009년도가 넘어가기 전에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문제나 근본적인 죄로 인한 문제까지도 다 해결받는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는 치료받기 위해 필요한 공의에 대해 새로운 한 가지 경우를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잘 깨달아서 꼭 해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설명드릴 내용은 날 때부터 기(氣) 적으로 즉, 체질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경우입니다. 사람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의해 잉태가 되지요. 이때 정자와 난자의 근본적인 상태에 따라 잉태되는 태아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가령 부모 중에 한 사람이 심히도 몸이 약하다거나 몸의 특정 부위가 안 좋은 경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정자나 난자에 유전적으로 이러한 부모의 건강 상태가 담겨서 결국 잉태된 태아에게도 영향을 주지요. 또는 잉태되는 순간의 환경이나 조건 등이 태아에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가령 술에 취한 상태라거나 어떤 약물 등에 의해 영향을 받은 상태라면 그것이 그 순간 잉태되는 태아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잉태되는 순간에 태아가 기(氣)적으로 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환경이나 조건 등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임신부가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공기와 환경 가운데서 있었던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차이가 태아에게 그대로 나타난다는 말이지요. 뿐만 아니라 임신부가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으로 임신 기간을 보내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도 각각 태아에게 영향을 줍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으로 특정 부위가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눈이 덜 좋게 태어난다거나 위가 덜 튼튼하게 태어나기도 하고 뼈들이 약하게 태어나는 경우도 있지요. 또는 몸 전체가 허약하게 태어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로, 몸에 좋은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기적으로 강하게 태어날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현상들이 어찌 보면 조상이나 부모가 쌓은 죄, 또는 쌓은 덕으로 인해 각각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조상이나 부모가 쌓은 죄로 인해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날 수가 있고, 반대로 조상이나 부모가 쌓은 덕으로 인해 기적으로 강하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그러한 경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유전적, 또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태어나면서부터 기적으로 영향을 받은 경우이지요. 아마 지금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 맞다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경우에 그것이 태어나서 곧바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그냥 타고난 것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하며 포기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이처럼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경우라도 공의의 법칙을 잘 깨우쳐 적용하면 능히 강건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먼저 어린아이 때는 부모의 신앙에 따라 아이의 약한 부분이 드러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 때는 부모의 신앙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그때는 아이 자신의 신앙에 따른 영향이 점점 더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이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신앙 상태에 따라 기적인 부분이 영향을 받지요. 따라서 자신의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기적으로 약한 분야가 있다면 부모가 더더욱 신앙생활을 잘해야 됩니다. 아이도 진리 안에서 살도록 잘 양육해야 하구요. 그러면 비록 약한 부분을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지킴 받을 뿐만 아니라 점점 강건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아이일 때는 잘 지킴 받다가도 성인이 되어서 지킴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빛 가운데, 진리 가운데 거하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임하여 결국은 온전한 상태를 회복할 수가 있지요. 반면에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진리 안에 살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가게 되면 그때 가서 기적으로 약했던 분야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진리를 벗어나 살면 마침내 그 약했던 분야가 질병 등으로 연결되지요. 그런데 어떤 경우는 기적으로 약했던 부분이 심한 마음의 연단을 받아가면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람이 연단을 받으면서 심히도 마음에 고통을 느끼거나 애통함으로 심령이 상하는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면, 아내가 남편으로 인해 심한 마음의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에서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어찌하든 선으로 연단을 통과해야 하지요. 그런데 계속해서 연단의 고통을 마음에 쌓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쌓인 고통이나 애통함이 결국 기적으로 약한 부분을 통해 병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요.
세상에서는 이런 경우 남편이 속을 썩여서 이런 병을 얻게 되었다며 남편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주 안에서는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연단으로 마음에 고통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님의 가르침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상대를 용서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감정과 악을 스스로 마음 안에 고통과 애통으로 쌓았기 때문에 그것이 기적으로 약한 부분을 통해 질병으로 드러나고 만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암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 들어와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간다면 스트레스나 감정, 또는 자기 악으로 인해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릴 염려는 없지요.

설령 태어나면서 기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었다 해도 늘 지킴 받아 강건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부분이 드러나는 또 다른 경우로는, 믿음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믿음을 내보이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잘해옴으로 인해 비록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부분이 있다 해도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지킴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건강검진이나 어떤 진단을 통해 자신에게 약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지요. 그동안은 기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 하면서 아무런 지장 없이 강건하게 살았는데 막상 자신에게 약한 부분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때부터는 왠지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운동 등 세상적인 방법에 관심을 가지지요. 그것이 더해지다 보면 결국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보다는 세상 방법에 의지하려는 마음이 커집니다. 그러면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지만 이때부터는 더 이상 지켜 주실 수가 없지요.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다행히 육적인 방법으로라도 약했던 부분을 강건케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동안 지킴 받을 때는 아무 이상 없던 부분에 어떤 질병 등이 틈탈 수가 있지요.
성도 여러분, 비록 기적으로 약하게 태어났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대로 신앙생활해 나가면 약했던 부분이 점차 강해지고 온전해 지지요.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를 쌓거나 진리대로 행치 못하는 경우 더 이상 지킴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맡기지 못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래서 결국은 기적으로 약했던 부분이 질병 등으로 드러나고 마는 것이지요. 그것이 공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공의에 비추어 자신이 왜 지킴받지 못했는지를 깨달아 그 원인을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때 다시금 기적으로 약했던 분야를 지킴 받고 날로 강건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경우에 따라 치료나 응답에 합당한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눈물의 간구 또한 행함이 필요합니다. 복잡하게 얽힌 영적인 끈의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선(善)을 쌓아야 하는 경우가 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조상의 악행이 영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해 사고를 당해서 불구의 몸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영적인 끈으로 연결된 고리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는 조상이 쌓은 악행에 상응하는 만큼의 선행을 쌓아야 하지요.
그래서 만약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한 눈금만큼 선을 쌓았을 때 공의 가운데 응답해 주실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한 눈금만큼 선을 쌓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행해 나가야 하지요. 그것이 온전히 차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는지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상의 악행을 대신 회개하는 눈물의 간구와 함께 중심에서 믿음과 선의 행함을 쌓아야 하며 혹여 쌓았던 눈금을 깎아 먹으면 안 되지요.
이런 상황에 따라 응답이 오기까지의 시간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응답에 필요한 눈금을 채워가는 만큼 조금씩 몸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눈금을 완전히 채웠을 때 온전해지는 경우도 있구요.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공의와 사람 편에서 생각하는 공의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성도님들이 믿지 않는 가족이나 믿지 않는 주변 사람을 모시고 와서 저에게 기도받는 경우가 있지요. 그런데 이처럼 믿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제 앞에 나와 단 한 번의 기도로 역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제 앞에 나온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선하게 살아온 경우라 할 수가 있습니다.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전도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저를 신뢰하여 제 앞에 나온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에도, 예수님 앞에 치료와 응답을 받기 위해 나온 사람들은 그래도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에 대해 안 좋은 소문들도 많이 퍼져 있었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권능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마음이 선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선한 마음으로 나왔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치료와 응답을 받을 수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제 앞에 나오는 분들 역시 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소식을 듣고 나왔습니다. 오늘날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느냐 하며 의심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지요. 들은 소문을 믿었고, 그런 분이 있다면 내가 그분 앞에 나가 기도를 받겠다는 선한 마음으로 제 앞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선한 마음으로 나왔다는 그 행함 자체를 믿음으로 봐주시지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치료받기 위한 공의를 만족시킨 것이구요. 그래서 한 번의 기도로 치료받고 응답받을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가 단번에 응답을 받았다 해서 큰 믿음이 곧바로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선한 마음으로 인해 치료의 역사를 체험하고 나면 이후로 하나님 앞에 믿음을 쌓아갈 수가 있지요.
반면에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는다 하는 사람인데도 제 앞에 나와 기도받아도 응답이 오지 않는 것이지요. 사실 믿는 사람으로서 제 앞에 믿음을 가지고 나왔다면 믿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응답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그중에는 믿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마음의 선이 더 못한 경우가 있지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제 앞에 나와서 "기도해 주시면 나을 줄로 믿습니다" 고백하며 기도를 받는다 해도 공의 가운데 응답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라도 지난날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회개하여 마음을 돌이키고 나와서 기도받으면 얼마든지 응답받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이사야 59장 1~2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응답해 주기 원하셔도 그 응답이 우리 편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치료나 문제 해결의 응답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허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지요. 그런데 이 죄의 담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했습니다. 그것도 좀처럼 헐기 쉽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단하게 굳어진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는 경우가 있지요. 하지만 아무리 얽히고설킨 실타래라도 하나하나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결국 풀 수가 있습니다. 물론 얼마나 많이 얽혀 있느냐에 따라 그것을 푸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죄의 담이 쌓여서 쉽게 응답이 올 수 없는 경우라 해도 계속해서 그 담을 헐어가며 선으로 하나님 앞에 쌓아가면 결국에는 반드시 응답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저주 받은 질병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도 예수님 앞에 나와 치료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나아와 믿음으로 기도받으면 치료와 응답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아직 치료와 문제 해결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권능이 부족하여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직 필요한 공의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변함없이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맡겨드림으로 하나님 앞에 구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공의가 충족이 됩니다.
더욱이 본 제단에서는 여러분이 응답받기 위해 충족시켜야 하는 공의가 영의 공간 안에서 훨씬 신속히 채워질 수가 있지요. 아직 치료와 응답을 받지 못한 분이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있음에 감사하시고 믿음과 감사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 주기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욱 넘치도록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것을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12-07 오후 11:10:26 Posted
2018-04-19 오후 2:36:3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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