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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일서 강해(3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4:4-6 등록일자 2012.12.23
요한일서 강해 서른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본문 요일 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자녀들아’ 할 때 자녀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을 말하지요.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지요. 아직 온전히 성결되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며 진리를 행해 나갈 때 하나님께 속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진리를 행하려면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요. 세상 정욕을 좇아가지 않고 진리로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 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는 것 등이 다 세상을 이기는 것에 포함됩니다.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에 맞서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지요.

아직 믿음이 연약할 때는 믿음의 싸움이 어렵게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초신자들 곧 믿음의 1단계에서는 세상에 지는 경우가 비교적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기, 질투, 미움, 혈기, 욕심, 간음, 이런 죄성들이 자기 안에서 요동할 때, 진리를 들어서 알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요. 마음의 갈등 속에 싸우다가 어떤 때는 진리로 승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유혹에 져서 범죄해 버리기도 합니다. 재정이나 질병 등의 어려움으로 곤고하면 감사와 기쁨을 잃고 불평하거나 원망하기도 하지요. 신앙생활을 하는데 핍박이 오면 이기지 못하고 타협하는 경우도 있고요.

믿음이 성장해서 2단계 중반쯤 이르면 어느 정도 싸워서 이길 힘이 생기지요. 격투기 종목의 경기에 비유하면 1단계에서는 아직 실력이 약하여 일방적으로 맞기가 쉽고, 2단계에서는 한 대 맞으면 나도 반격하여 한 대 때릴 정도의 실력은 됩니다. 이렇게 선수들의 실력이 비등하여 한대 맞고 한대 때릴 정도의 경기가 가장 치열하지요. 영적인 싸움도 이 시기가 가장 치열합니다. 롬 7:24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는 고백처럼 믿음의 행군이 어렵게 느껴질 수가 있지요.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로 넘어서면 이제는 어느 정도 우월한 입장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습니다. 3단계 중에서도 반석에 서면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1단계나 2단계에 있을 때 믿음의 싸움이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혼자 싸우면 어렵지만, 월등하게 강한 선수가 옆에서 지원을 해 주면 자기 실력이 좀 부족하다 해도 능히 싸움마다 승리할 수 있지요.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어도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그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으로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지요. 다시 말해서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는 믿음의 분량이 적다해도 세상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빌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신 대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리 안에 거할 수 있지요.

예전에 혈기와 짜증이 많았던 사람도 주님을 영접하여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할 때는 혈기를 내지 않습니다. 고난이 와도 기도와 찬양으로 이겨내고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거나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감사하며 기뻐하지요. 맞서 싸우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해 주고 선한 말로 대응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몸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쉬지 않고 기도하며 각종 예배에 참석합니다. 비록 믿음의 1, 2 단계의 초신자라 해도 성결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항상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할 수 있지요.

반면 믿음의 3단계라 해도 기도의 양이 부족하거나 마음의 할례에 게으르면 신앙의 성장이 멈추게 됩니다. 이렇게 신앙이 정체되면 성령의 충만함도 서서히 사라지고, 점차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지지요. 충만할 때는 하루 종일 예배드리고 밤늦게까지 교회에서 봉사해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충만함이 떨어지면 모처럼 쉬는 날인데 나도 일찍 들어가서 오락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전에는 두세 시간 철야 기도도 금방 지나갔는데 이제는 점점 기도가 부담스럽게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선교회나 구역 모임마다 찾아갔는데 은혜가 떨어지면 점점 마음이 멀어지고 한 번, 두 번 빠지게 되지요. 이럴 때 어떤 사람은 마 26:41 후반절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변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기 원하셨지만 제자들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 육신이 피곤하니 기도하다가 잠들어 버렸지요. 성령을 받지 못했을 때였기에 베드로도 이렇게 피곤하면 졸기도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지만 육신이 약해서 못한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육신을 초월하여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살기등등한 위협 속에서도 권능을 행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네로 황제의 핍박이 한창인데도 복음전파를 위해 로마로 달려갔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지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하는 본문 말씀대로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진 어둠의 능력보다 큽니다.

히 11:38 전반절에도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했지요. 세상이 성도들을 아무리 핍박하거나 미혹해도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은 기쁨과 감사, 지혜와 능력으로 능히 이길 수 있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항상 성령이 충만하여 세상을 이겨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승전가를 부르며 새 예루살렘 진주 문을 통과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어지는 본문 5절, 6절에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 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했습니다.

전에 살펴본 4:1-3에도 영분별에 대한 설명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과 어둠의 영을 분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 했지요.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 안에 거하는지 아닌지가 빛과 어둠을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말씀을 좀 더 보충하는 설명이 나옵니다. 곧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듣는가에 따라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분별된다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자기가 속한 영역의 말을 하며 그 말을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나라에 출장을 갔는데 그 나라의 언어를 전혀 모른다고 합시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서로 아무리 재미있게 대화를 해도 여러분의 귀에는 그 대화가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좀 떨어진 곳에서 “여보세요, 저 지금 식당에 있어요” 하고 우리말로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 귀가 번쩍 뜨이지요. “우리나라 사람이구나” 하고 반갑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게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내가 쓰는 말이고, 내가 알아듣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진리에 속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진리에 속한 말에 마음이 동합니다. 선한 말, 화평의 말을 들을 때 귀가 솔깃하며, 기쁘고 즐겁지요. 자기 자신도 선한 말을 하고요. 반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비진리의 말을 합니다. 또 자기 안에 비진리가 많은 만큼 선한 말은 흘려듣게 되고 악한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에 담게 되지요.

예를 들어 직장에서 부장님이 사장님께 책망을 듣고 기분이 상했습니다. 마침 그때 자기 부서 직원들이 작은 실수를 하자 부장님은 심하게 야단치며 분풀이를 했지요.

그 후에 직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에이(A)라는 직원이 말을 꺼냅니다. “도대체 왜 부장님은, 사장님께는 한 마디 대꾸도 못하시면서 힘없는 우리에게만 화풀이를 하시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번 그러시는데 기분 나빠서 일을 못하겠다” 합니다. 그러면 부장님에 대해 감정이 상한 직원들은 “맞아 맞아” 하면서 동조하고 전에 있었던 불편한 일들까지 들춰내지요.

그럴 때 비(B)라는 사람이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부장님이 오늘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절제를 못하고 화를 내셨지만 내일이면 미안해 하실 텐데, 우리가 그냥 이해하고 섬겨드립시다, 직장생활 하면서 모두가 어려운 일이 많은데 우리가 이해 못하면 누가 이해하겠어요” 하지요.

여러분이 에이의 말과 비의 말을 들어 보면 누구의 마음에 선이 있는지를 벌써 분별할 수 있지요. 에이(A)의 말을 들을 때 공감이 가고 그와 함께 부장님에 대해 불평이 나온다면 자신의 마음에도 선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런 사람들은 비(B)가 선하게 말을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선한 말을 하는 비(B)까지 싫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윗분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거나 “혼자만 착한 것처럼 군다”고 비난하지요.

반면에 선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에이(A)의 악한 말을 들을 때 동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민망하게 여겨지지요. 반면에 비(B)의 말을 들을 때는 그 선한 마음을 느끼므로 듣는 사람의 마음도 평안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말을 귀 기울여 듣는지에 따라 자기 마음의 선과 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탐심과 거짓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로 남을 속이기도 하고 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기도 합니다. 사심과 교만이 있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남이 간사한 말로 부추기면 으쓱해서 좋지 않은 일에 이용당하기도 하지요. 또 마음에 음욕이 있기 때문에 정욕적인 말, 더러운 말하기를 좋아하고 남들이 그런 말을 해도 재미나게 듣습니다. 말을 듣는 것만 아니라 남의 말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종종, 이런 식으로 남의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전에 김 집사님이 이 집사님에 대해 말하기를 교만해서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고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제 생각에는 이 집사님이 그렇지는 않을 텐데 김 집사님이 이 집사님을 불편하게 여길만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이런 식으로 남의 말을 옮기는 경우가 있지요. 나는 이 집사님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고, 단지 김 집사님의 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집사님이 자신의 가족이거나 아주 가까운 친구라면 남들에게 이런 말을 전할 리가 없지요. 사실은 자기 안에도 이 집사님의 허물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핑계로 험담을 입에 담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도 사실은 그가 하는 말이 이미 자기 안에 있는 감정과 선악을 드러내고 있지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속한 사람, 비진리의 사람은 진리에서 벗어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눅 6:45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또 잠 15:2에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했지요. 악한 사람이 가식적으로 선한 말을 하려고 해도 결국은 그 악이 드러나지요. 또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에 귀 기울이며 동조합니다.

반면 하나님께 속하여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진리의 말을 하기 원하며 진리의 말을 듣기 원하지요. 사람의 선과 악뿐 아니라 어떤 영의 역사를 받고 있는지를 분별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곧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듣는지를 보면 되지요.

본문 6절 후반절에도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말, 미혹하는 말은 성령의 역사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마음에 진리가 잘 채워져 있고 성령의 역사를 밝히 받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미혹하는 말을 들어도 그 말이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짓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 4:3 전반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했고, 빌 2:15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했지요.

진리의 영, 하나님의 영을 받은 목회자라면 반드시 양 떼에게 죄를 지적하고 성결을 가르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정욕에 물들면 안 됩니다. 우상 앞에 절하면 안 됩니다. 간음과 혈기, 탐심과 미움을 버려야 합니다. 거룩하고 정결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항상 선포하지요. 또한 성령의 역사를 받는 성도들은 이런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자기 안에 계신 성령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끼고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반대되는 주장을 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거룩할 수 있나? 계명을 다 지키라는 말씀은 구약 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이지,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하지요.

또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민하거나 핍박받는 성도들을 보면 적당히 타협하라고 설득하기도 합니다. “주일을 꼭 그렇게 온전히 지킬 필요가 있나 예배만 한 번 드리고 영업을 하면 되지, 또 이미 교회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남은 시간에 오락을 좀 취하면 어때” 하거나, 내가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잘 믿으면 그만이지 제사상에 절 한 번 하면 되는 것 가지고 고집부리면서 화평을 깨야 하나, 상대의 마음을 맞춰 주고 화평을 이뤄야 주변 사람들을 전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끝)

2012-12-25 오전 2:14:34 Posted
2013-01-01 오전 4:04:3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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