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중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세 번째 계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
출애굽기 20장 7절에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합니다. ‘죄 없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죄 있다.” 정죄하신다는 말이지요.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죄 있다 정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게 되며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위한 명령을 주셨는데도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하지 못하고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물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리를 좇아 살고자 한다면 무심결에라도 이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전에 보면 ‘망령되다’는 말은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경건치 못하며 허망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하지요.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하나님 말씀인 것처럼 말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나 농담하는 등 여러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하면 “하나님도 무심하시다.”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하기도 하지요.
모든 영광과 존귀를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피조물의 입장에서 망령되이 거론한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죄 있다고 하시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중에도 “신은 죽었다.” 한 사람이 있고, 일반인 중에도 “하나님은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구소련의 한 우주 비행사가 “우주에 가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 데도 안 계시더라.” 했다고 하지요. 극히 미미한 우주 공간을 탐험하고 모든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다고 안 계신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시편 53:1)
겸손한 마음으로 천지 만물을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든지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수많은 전도자가 있어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지요. 그런데도 스스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므로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말한다면 어찌 죄 없다 하시겠습니까?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찮게 여기며 우습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시편 96편 4절에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했고, 심지어 출애굽기 33장 20절에는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피조물이 감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양심이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해도 하늘에 관한 것에는 존칭어를 썼습니다. 비가 올 때도 “비가 오시네.”라고 존칭을 썼는데, 비록 하나님을 알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전능하신 조물주가 계셔서 하늘로부터 비를 내려주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에 대해서도 부모님이나 존경하는 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고, 꼭 불러야 할 때는 존칭을 붙여 표현했지요. 하물며 하나님에 관해서 언급하는데 얼마나 경건한 자세로 대해야 하겠습니까?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삼갔다고 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직접 언급하지 않으려고 ‘아도나이’ 곧 ‘나의 주님’이라고 읽었지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익한 말로 농담하면서 성경 구절을 엉뚱하게 인용하거나 하나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므로 말씀을 소홀히 여긴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가령, 자기 유익을 구하면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양보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것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생각 속에 떠오른 것을 “하나님께서 음성을 주셨다.” 하거나 “성령께서 주관하셨다.” 하는 경우이지요. 만약 제가 전혀 하지 않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당회장님이 말씀하셨어요.” 한다면 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움직이기 위해 “당회장님의 뜻이에요.” 한다면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민망하겠는지요?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헛된 말을 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헛된 말을 한다면 심히 무례한 일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선악 간에 행하는 모든 말과 행실을 손금을 보듯이 다 알고 계십니다.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모든 사람의 삶을 지켜보시고 각자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경외하므로 대화 중에도 늘 신중하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치 않도록 삼가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하실 것은, 정녕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도 근신하고 절제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 말씀을 대하거나 인용할 때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한다면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게 되지요. 또 성전과 성물을 대할 때도 자기 물건보다 더 소중히 조심스럽게 다루고, 하나님의 재정을 집행할 때도 근신하여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정확하게 집행합니다.
만약 교회 재정으로 구비한 물컵을 깨뜨리거나 성전 안의 거울이나 창문을 깨뜨렸다면 모른척하고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기관, 선교회 등의 회비도 사사로이 사용하면 안 되고, 임원회의 후 지출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나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 직접 관련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간섭하시는 분야에 대해 사람이 육신의 생각 속에서 판단하거나 무례하게 말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하지요. 하나님을 존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경건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거짓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 거짓 선지자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선포하거나 알려주신 예언이라고 하여 백성들을 미혹하지요. 이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엄히 경계하십니다(신 18:20).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는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는데, 여기서 거짓말하는 자란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말하여 죄 있다 정죄함을 받게 된다면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한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지요. 레위기 19장 12절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데도 “내가 기도하다가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내 마음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 하거나, 어떤 일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무조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셨다.” 말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역사라면 상관이 없지만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이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무조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죄를 버리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는 만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살지 않고 세상과 짝하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비진리가 가득하면서도 들레는 마음과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때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조금씩 듣는다 해도 100%가 되기까지는 성령의 음성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아직 확실히 분별하지 못할 때는 함부로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뿐 아니라 꿈이나 환상 등 여러 영적인 체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꿈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사람이 자기 생각 속에서 꾸는 꿈과 사단이 역사해서 꾸는 꿈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지 않은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이름으로 말할 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분이 제게 와서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다면 아무리 소자의 말이라 해도 저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성령의 음성이라면 제가 그것을 거역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 역시 성령의 음성을 들으므로 상대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기도해서 정확히 알기 전에는 그 말이 “성령의 음성이다.” 혹은 “아니다.” 하고 경솔하게 단정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범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재앙을 만났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치셨다.” 합니다. 또 자기 생각대로 일이 풀어지는 것 같으면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셨다.” 하고는 얼마 후 그것이 꼬이고 막히면 “하나님께서 막으셨다.” 하고 말을 바꾸는 등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합당하지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렇게 하면서 자기편에서는 믿음의 고백이라 하지만, 진실한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과 들레고 경솔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이는 말은 전혀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중심으로 경외하며 항상 깨어 기도해 마음을 점검하시므로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모든 말과 행동을 보장하시며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므로 천국에서도 가장 영화로운 자리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8-29 오후 4:53:02 Posted
2025-09-21 오전 11:49:5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