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돈이 목숨보다 귀하다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을 향해 추구해 온 자신의 꿈을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명예와 권세, 건강, 혹은 가족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본문 빌립보서 3장 8절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명예와 지식,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안락함까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기꺼이 버린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사도 바울에게 무엇이 그토록 소중했기에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귀하게 여긴 사도 바울
디모데전서 1장 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 바울은 성도들을 심히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자,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심히도 핍박했는데, 예수님은 이런 나를 살리기 위해 죽으셨구나!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참혹한 고통과 수난을 받고 죽으셨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사랑과 감사가 가슴 깊이 사무쳤습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이 발견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갚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15절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도 바울은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가 어떤 오해를 받아도 변명하지 않았고, 주를 위해 다 드리고 자신의 소유가 없어도 그 때문에 서글프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지식을 쌓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자신의 지식과 의를 철저히 부인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저는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7년간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았고, 남은 것은 절망과 고통뿐이었습니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였지만, 하나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먼저 찾아주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가난과 불행에서 건져 내 천국의 소망과 귀한 사명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사랑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북받쳐 오르는 감격과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늘 마음에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을 위해 살기 원했고,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귀한 하나님의 사랑은 몇몇 사람에게만 특별히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주신 그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임한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사도 바울이나 저의 경우처럼 극적인 상황에서 주님을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간증과 체험은 다들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불타오를 때 생명 다해 믿음의 길을 달려가셨듯이, 지금도 변함없이 뜨겁게, 전보다 더 뜨겁게 달려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이 지난다 해서 희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새롭고,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질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은혜와 사랑을 항상 되새기며 날마다 더 새로운 감동 속에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천국 복음을 가장 귀하게 여긴 사도 바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셨습니다. 죽을 영혼을 살리시고 지옥에서 건져 주신 것만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믿는 자녀들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까지 주십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잡혀가서 사형당할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큰 부자가 여러분을 사랑해서 대신 모든 빚을 갚아 줍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고 평생토록 은혜를 갚아야 할 일인데, 그 부자는 여러분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고 상속자로 삼아 모든 소유를 누리게 해줍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만한 일입니까?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가 본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인 낙원이지만, 세상의 그 어떤 부와 권세도, 그 어떤 행복도 배설물처럼 헛되게 보일 정도로 천국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천국 소망 하나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당장 주리고 목마를지라도, 고된 일 속에 지쳐 있더라도 그 마음에는 항상 감동이 있었습니다. 고난받아 삶의 소망이 끊어지려 할 때에도 천국을 주신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하면 다시 일어나 달려갈 힘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을 이뤄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 있기 위해 변화되고자 노력하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한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천국과 천국 생활에 대해 많은 말씀들을 듣고 배웠습니다. 천국은 어떻게 분류되는지, 각각의 처소마다 집의 외형은 어떻고, 집 안에는 어떤 시설이 있는지, 그 안에 장식된 보석은 어떠한지, 천사들이 어떻게 수종을 드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면류관을 쓰며,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될지, 이런 세세한 것까지도 들으셨습니다. 이런 말씀은 어떤 다른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멀고 먼 훗날의 일도 아닙니다. 천국은 바로 여러분이 들어가야 할 처소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곧 들어갈 곳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갈 것을 참으로 소망한다면, 그냥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도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아껴 저축을 하고, 쉬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일합니다. 천국의 집은 이 땅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으니, 더욱 인내하고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이 땅이 아니라 천국에 하나라도 더 쌓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현실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천국 소망이 있으면 지치지 않습니다. 서둘러 죄악을 벗어 버리고 열심히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여, 날마다 기쁨과 감사로 모든 것을 천국에 쌓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영혼을 가장 귀하게 여긴 사도 바울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당연히 영혼 사랑이 불탑니다. 나는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고 해서, 혼자 마음 편하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천국과 지옥을 너무나 밝히 알았습니다. 또한 죽어가는 영혼을 볼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탄식하며 마음 아파하시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만난 뒤부터 평생 영혼을 위해 살았습니다. 쉬지 않고 여행하며 교회를 심방하고 성도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이겨야 했고,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때도 많았습니다. 강도를 만나거나 애매히 핍박받아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감옥에도 들어갔고 망망한 바다에서 표류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백합니다. 무수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기 신세를 염려한 것이 아닙니다. 좀 더 맛있는 음식이 없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편하게 쉬면서 좋은 것을 누릴까, 어떻게 하면 더 사랑을 받을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교회에는 어떻게 더 믿음을 심어줄까, 저 영혼들이 어찌하면 더 힘내어 연단을 이길 수 있을까 늘 이런 것을 근심하며 눈물로 기도했을 뿐입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 칭찬받고자 이처럼 충성한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도 높임받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 보면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는 고백이 나옵니다. 영혼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과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를 대신해서 지옥에라도 갈 수 있는 마음인데,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있을 리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절대적인 사랑만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죽어가는 영혼을 얼마나 불쌍히 여기는지, 내게 맡겨진 영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편히 쉬고 즐기는 것보다, 기도하고 전도하며 심방하고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매순간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마음에 담고 되새기는지요, 아니면 때에 따라 세상과 짝하거나 꼭 세상을 취하지는 않는다 해도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남아있는지요?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은 너무나 많이 들었고 배웠습니다. 마지막 때가 몹시 가깝고,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은 여유가 좀 더 있겠지 하고 세상에 마음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는 신랑을 기다리다 잠들어 버린 미련한 다섯 처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도 신랑이 오실 줄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래 기다려도 신랑이 더디 오니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채 졸음에 빠졌고,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는 이미 기름을 준비하기에 늦어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부 단장을 해왔습니다. 마음과 시간, 충성과 물질 등 많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온전한 축복으로 갚아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도 축복받고, 천국에서도 새 예루살렘의 영광이 반드시 임하길 원합니다. 오직 하나님 사랑만이, 천국 복음만이, 영혼에 대한 사랑만이 여러분 안에 가득 채워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8-05-19 오후 3:35:34 Posted
2018-07-09 오후 10:38:20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