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통해 ‘한 알의 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나의 자아(自我)가 죽어지는 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져서 열매 맺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 알맞은 온도, 공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적절하게 갖춰지면 씨앗에서 싹이 나고 뿌리가 나는 생명 활동이 시작되지요. 한 알의 씨앗이 양분으로 제공되기 위해 스스로 죽어져 자기 형체가 사라질 때 새 생명으로 탄생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반면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도 씨앗이 완전히 죽지 않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열매를 맺지 못하지요. 이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죽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이사야 53장 4-9절을 보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말씀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성취되었고, 수많은 영혼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이런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위해 예수님은 온전히 죽으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을 받기 전에도 피조물에 의해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지요. 또한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가시관을 쓰시고 손발에 못 박히시며 온갖 조롱을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시기에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철저히 죽어지셨습니다. 이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히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뜻하며,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과 같은 선진들도 이러한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철저히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2. “자아(自我)”가 죽어져야
왜 ‘자아’가 먼저 죽어져야 할까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하지요. 그런데 각기 다른 부모, 환경, 다른 가르침 속에 자아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생각과 옳다 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식들은 진리에 맞지 않는 것이 많으며, 교양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그러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해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나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가 옳다 하는 생각이 다 맞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를 주장하면 안 되지요.
진리를 알기 전 우리는 상대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쉽게 판단 정죄하며 미워했습니다. 내가 죽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자신의 생각은 참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틀린 것이 많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이제 진리가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됩니다. 마음 문을 여는 만큼 진리가 들어와서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는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믿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가 죽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죄와 싸울 때는 힘써 싸워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버리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 싸움인지를 알려 줍니다. 마음의 비진리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벗어지지요.
열심히 죄와 싸워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불세례를 내려 주셔서 죄성을 태워 주시는 등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들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되지요. 몸과 결합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됩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 진리와 위배되는 자기 안의 죄악을 벗어버리는 것이지요.
3. 믿음에 따라 “자아(自我)”가 죽어지는 단계
이제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1단계는 말씀을 들으며 의심되고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사와 표적 등에 대한 의심을 물리치는 노력을 해야 하지요. 이 단계에서는 죽어져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먼저는 ‘그게 맞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의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 제단에서는 치료와 응답, 성도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나타난 일들에 대한 간증이 넘쳐나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치료하시고요. 응답하세요.” 말로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삶에서 드러나고 나타난 하나님을 만난 체험들, 진실한 간증들이 증거합니다. 의심을 깨뜨리는 이 작업이 내가 죽어지는 단계의 시작입니다.
믿음의 2단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육체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깨달아 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일이라는 것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것을 죄라고 하시는지, 말씀을 열심히 찾아 듣고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믿음이 생겼으면, 알지 못했던 나의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말씀을 통해 깨달았다면 이제는 행함으로 죄를 버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자신에게 있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힘써 버려 나가는 만큼 자아가 죽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육신의 일은 행함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입니다. 미워하는 생각, 판단과 정죄하는 생각, 이것은 생각과 마음 안에 있는 죄들, 육신의 일이라고 하지요. 이것이 믿음의 3단계에서 버려가는 과정입니다. 버려가는 만큼 내가 죽어지고 내 안에 주님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요.
믿음의 반석 이상 서게 되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아직 살아있는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합니다. 비진리가 아닌 진리로 새롭게 만들어 놓은 자기 의와 틀이지요. 대표적으로 욥이 있습니다. 욥은 아직 영으로 들어가기 전이었지만 행위적으로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 연단을 하십니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단계가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모습입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는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될 뿐 아니라 껍질도 썩어 없어져 어떤 모양도 남지 않습니다. 이렇듯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뀔 뿐만 아니라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를 영접한 후 구습을 버린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자기 의와 틀은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나를 만든 구습이기 때문에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나를 진리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옳은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진리를 가지고 지적하고 권면하고 질타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을 연단하시고 책망하시지, 죄 없는 사람에게 그러실 리가 없어!”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로는 욥과 같이 행위적인 죄가 없지만 마음 근본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버리고자 연단하시는 경우도 있고, 또 큰 축복을 주시고자 시험하시는 경우도 있지요.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것으로 상대를, 또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서 평가할 때 큰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들어가고, 온 영으로 들어갔어도 ‘내 생각이 다 맞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면 꽉 찬 곡식처럼, 벼가 고개를 숙이듯 더 겸손하고 겸비해집니다. 그래서 상대가 어떠한 것을 주장한다 해도 “내 말이 맞아!” 하지 않지요. 도리어 “다시 한번 살펴볼게요.” 한다든가 ‘상대방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참이기 때문에 나의 경험도 나를 만든 모든 자아와 틀도 진리로 다 바꿔야 합니다. 어떤 것은 죄는 아니라 해도 육체의 결여라면 버려 나가야 온전히 자기를 죽이고 주님으로만 채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의 악과 비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될 때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얼마나 죽어지는 밀알이 되었는가? 죽어지는 듯해서 떡잎이 나왔는데 씨앗의 형태는 그대로 있겠다고 고집하여 온전히 죽어지지 못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죽어지기를 원치 않아 딱딱한 밀알 그대로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분명 여러분에게 천국 소망이 있고 영적인 믿음을 가졌다면 자기를 형성한 육신과 자기 의와 틀을 열심히 죽여 갈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요.
죽어지기를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주안에서 온전히 죽어지심으로 여러분을 통해 30배, 60배, 100배의 놀라운 열매가 맺혀 천국에서나 이 땅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09-18 오후 4:38:56 Posted
2025-09-26 오전 10:40:06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