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아랫음부의 3단계 형벌에 관해 설명했고, 오늘부터는 4단계 형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랫음부의 형벌을 크게 둘로 구분하면 비교적 형벌이 가벼운 1, 2단계와 매우 무거운 3,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2단계 형벌에 떨어진 영혼 중에는 불신자가 많습니다. 주님에 대해 듣지 못해서, 또는 진리를 잘 몰라서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간 이들이 많지요. 반면에 3, 4단계 형벌을 받는 영혼 중에는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는데도 중한 형벌에 떨어졌을까요?
바로 그 마음이 변질해서 하나님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체험하고도 성령을 훼방하고, 죄인 줄 알면서도 짐짓 죄를 짓는 등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또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 불신자보다, 진리를 잘 모르는 초신자보다 더 악을 행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 짐짓 죄를 지어 나가는 것은 큰 죄입니다(눅 12:47~48). 대부분의 죄는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지만 이런 죄는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사망에 이르지요. 곧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곧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음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했지요.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죄, 곧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3, 4단계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중 죄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람들은 3단계 형벌을 받고 더 무거운 사람들은 4단계 형벌을 받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사망에 이르는 죄는 결코 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는 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용서받을 수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
1) 구원받았다가 타락해 다시금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경우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주님을 믿기 전 갖가지 문제에 시달리는 풍전등화 같은 인생이 주님을 영접하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랑의 주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지요. 질병이 치료되고 부요한 삶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은혜가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 내어 헌신하니 어느새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 직분도 받았지요.
그런데 이렇게 충만하게 달려가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세상이 다시 마음에 들어오자,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주님을 알기 전보다 세상에 더 깊이 빠져 세상 사람보다 더 정욕을 좇아 살아가지요(벧후 2:20). 어떤 이들은 자신이 변개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회를 욕하고 주의 종과 성도들을 비방하며 더 큰 악을 발합니다. 심지어 사단의 역사를 크게 받아 갖가지 궤계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타락한 사람들은 다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현저히 욕을 보인 죄인으로 정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기 전, 마귀의 자녀로 세상과 짝하여 살면서 예수님을 이미 한 번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지요. 이런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다시 타락하여 세상과 짝하며 산다면 이는 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입니다. 그러니 이런 영혼은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갓 구원받은 초신자도 아니고 각종 성령의 은사와 놀라운 권능, 영의 세계 등 신령한 것들을 체험하고 진리의 말씀을 많이 들어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구나 용서받기가 어렵지요. 결국 영원한 사망, 지옥의 형벌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짓는 경우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했습니다.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죄인 줄 알고도 고의로 죄를 지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면서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계속 정욕을 좇아 짐짓 범죄하면 양심의 가책이나 곤고함도 없어집니다. 회개의 영도 오지를 않지요. 마음에 화인 맞아 가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못 하면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으니, 성경은 이런 사람의 앞날에는 무서운 불지옥이 기다릴 뿐이라고 말씀합니다.
3)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당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 지폈다’ 하거나 ‘마귀의 역사라’ 비방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 예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들을 보면 “사단의 역사다.”, 혹은 “이단이다.” 정죄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근거나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반감을 갖고 이렇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람으로서는 나타낼 수 없는 기사와 표적,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더욱이 이 권능의 역사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면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성령의 역사를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를 구원받은 자녀라 인정하지 않으시지요.
이렇게 성령을 대적한 사람들이나 성령의 역사를 분명히 체험하고도 배신한 사람들은 회개의 영이 오지를 않습니다. 말로 회개한다고 해도 죄의 담이 헐리지를 않지요. 죽은 후에는 아예 주님을 몰랐던 불신자들보다 더 큰 죄인으로 정죄 받아 아랫음부 중에서도 3, 4단계의 중한 형벌에 떨어지고 맙니다.
2.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 받는 4단계 형벌
아랫음부의 4단계 형벌도 3단계와 마찬가지로 지옥 사자가 직접 형벌을 주관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정도나 참혹함은 차원이 다르지요. 인간 경작 이래 가장 극악한 죄인들이 형벌 받는 곳이니 그 형벌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4단계에는 십자가에 달린 채로 고문받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이유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저주의 대가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는 우리 각 사람이 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죄로 인한 저주를 속량해 주셨지요(갈 3:13).
4단계 형벌에 떨어진 영혼들은 이런 대속의 은혜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은 양심에 화인 맞아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돼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딤전 4:1~2).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지요. 그래서 저주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각자 자기 죗값을 받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배신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가룟 유다입니다.
3.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받는 형벌
가룟 유다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곁에서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사랑받았고 진리의 말씀, 선의 말씀을 배웠지요. 놀라운 기사와 표적도 전해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보았고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탐욕을 버리지 않으므로 사단의 사주를 받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넘겼지요. 물론 늦게나마 자기 죄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자신에게 돈을 건넨 자들에게 가서 되돌려 주려 했고, 회개하려 해도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았지요. 끝내 그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이로써 4단계 형벌을 받는 가룟유다는 수많은 십자가 무리의 맨 앞에 매달려 피 흘리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필두로 해 그 뒤로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많은 영혼이 십자가에 달린 채로 쭉 늘어서 있지요. 이 음산한 광경은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공동묘지, 혹은 수많은 짐승을 잡아 매달아 놓은 도살장을 연상시킵니다.
가룟 유다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나무로 만든 관이 씌워져 있는데, 온 머리를 휘감은 가시는 계속 자라서 피부를 뚫고 두개골을 파고들어 뇌를 찔러댑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는 무언가 꿈틀거리는 짐승 같은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4단계 형벌에 떨어진 다른 영혼들입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악을 쌓아 지옥에 온 자들입니다. 심한 고문을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니지요.
이들은 가룟 유다의 십자가 아래에서 지옥 사자의 창에 찔리며 고문당합니다. 자기들이 창에 찔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가룟 유다를 창으로 찔러댑니다. 자기들의 고통이 심할수록 더 힘껏 가룟 유다를 찌릅니다. 악에 받쳐서 더욱 악랄하게 찔러대며 분풀이하지요. 지옥 사자들은 입을 모아 가룟 유다를 조롱합니다. “저가 구세주, 자기를 구원할 자를 팔아넘긴 자라. 저가 우리에게 이롭게 하였도다. 정녕 잘하였도다. 웃기도다.” 하며 웃어대지요.
가룟 유다는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과 함께 이런 조롱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함께 받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넘긴 저주받은 자임을 거듭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점점 자라나는 가시가 머리를 찌를 때마다, 날카로운 창들에 찔릴 때마다 그 기억은 더욱 뚜렷이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 부름을 받은 만큼, 가룟 유다도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마음이 뜨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은 그가 생각하는 왕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지요. 자신이 맡아 관리하는 돈궤의 돈을 조금씩 훔치면서 탐심을 채우는 것이 다였습니다.
이처럼 자기 의와 탐심 등의 악이 그를 예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했고, 마침내 예수님을 종의 몸값인 은 삼십에 팔아넘기기에 이릅니다. 예수님의 오랜 기다림 속에서도 그는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배신자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지요.
혹여 여러분 중 아직도 자기 의, 탐욕 이런 악들을 다 벗어 버리지 못하셨다면 이제는 다 벗어 버리심으로 참 평안과 행복, 새 예루살렘의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5-11 오후 1:37:30 Posted
2023-05-21 오후 4:02:51 Updated